일상에 대한 고마움은 여행 중에 느끼는 귀한 감정이다
친구가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할 일을 처리하느라 나보다 몇일 뒤에 출발했다. 숙소를 아파트로 옮겼다. 지은지 50년은 넘었을 러시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4층 아파트이다. 건물의 외관은 강남의 재건축예정 아파트보다 훨씬 못하지만 내부는 더운 물을 비롯하여 있을 것은 다 있다. 취사 및 난방도 전기로 이루어진다. 부엌살림살이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주인인 러시아 아줌마 리디아가 구석구석 채워놓은 비품과 시설을 설명해 주는데 얇은 드럼식 세탁기가 마음에 든다. 러시아에서 벌써 6일 밤을 잤으니 빨래도 해야 한다. 전망이 끝내주던 Geyser hotel 의 싱글룸 하루 방 값으로 이 아파트에서 친구와 둘이서 세 밤을 잘 수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가져다 준 혜택이다.
근처 슈퍼마켓을 갔더니 반찬가게나 야채가게에 낯익은 동양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친구와 갈비탕에 넣을 무우를 찾느라 우리끼리 한국말을 하니 한 아줌마가 한국말로 아는체를 한다. 아줌마 덕택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던 통무를 쉽게 찾고 어떻게 한국말을 하시냐고 물으니 한국에서 5년 일하고 왔단다. 아마도 취업비자를 우리나라가 5년까지만 주는 것 같다. 김치 비슷한 것도 좀 사고 오늘은 갈비탕이 저녁만찬이다.
여행다니며 밥을 해먹어 보면 안다.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가고 손이 많이 가는지를... 식재료를 찾아 다니고 익숙하지 않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잘 먹은 뒤 설겆이까지 하려면 세끼 식사를 위해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사용하는 것 같다. 매일 세끼 음식을 장만하던 한국의 어머니와 아내와 딸과 며느리들의 고충과 수고가 느껴진다. 밥 빨리 안해 준다고 투정하던 때가 이제서야 후회된다.
지금은 다 장성한 아들이 초등 6학년 일때 둘이 배낭 메고 인도 히말라야 밑자락에 간 적이 있다. 그 일대가 힌두교 및 시크교도 성지라 모든 주민이 채식주의자다. 호텔에 술은 커녕 맥주조차 없다. 왜? 성지순례 오는 사람들이라 술이나 고기를 입에 안대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꽃들의 계곡'을 찾아 가던 우리는 한참 만에야 삶은 달걀을 마주할 수 있었다. 험한 산길에서 성지순례객들을 태우는 노새와 당나귀를 다루는 마부들의 식당에서... 그 때의 반가움이란 제법 긴 외국여행뒤 귀국하여 단무지와 함께 하는 달걀 푼 라면을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컸던 것 같다. 흔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은 여행 중에 느끼는 귀한 감정이다. 얼마나 오래 기억하느냐가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