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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19. 2022

차라리 암이 낫다고?

메뉴판에서 고르듯이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 존재임을 안다. 통계적 지식도 충분하며 신문도 읽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내면 한 곳에서 '나는 아냐'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명이 유한해도 나는 예외이며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히 현실이 그와는 반대임을 우리는 알지만, 그 환상은 놀랍도록 오래간다.

  - 제임스 홀리스의 '사랑의 조건' p.64 -


살기도 바쁜데 무슨 죽음을 생각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지금 너무 행복한데 이 행복을 조금도 손상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는 더욱 외면하고 산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의 장례나 알던 지인의 부고를 접하면 그동안 잊고 살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거나 우리 모두가 사형수라는 사실은 이성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사형 집행이 어느 날 갑자기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잊고 산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을 안다면 드디어 내게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왜 내게 이런 병이?' 하며 오히려 억울해한다.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나라고 무슨 재주로 노화, 병환,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종양내과 선생님이 쓰신 글에서 읽은 적 있다.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10년만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10년이면 제법 긴 시간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정리할 것이나 하고 싶은 것 하기에 충분한 시간 말이다. 한국 남자들의 평균 건강수명이 74세라고 하는데 올해 만 64세가 되고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평균만큼 건강하다면 10년이란 건강한 시간이 내게 남은 것이다. 종양 내과 선생님은 10년만 더 살게 해 달라는 암환자들에게 짓궂게도 물었단다.


"10년 동안 무엇을 하시려고요?"


구체적으로 대답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럼 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정리할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시간이다. 혹시라도 종양내과 선생님과 같은 질문이 오면... 건강할지 모르는 10년의 시간을 어찌 보낼지...


건강수명을 산 한국 남자들은 평균 10년을 건강하지 못하게 지내다가 수명을 다한다고 한다. 건강 수명 이후의 연옥 같은 이 끔찍한 10년의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94세까지 살다 가신 내 아버지는 이 기간이 14년이었다. 팔순 기념으로 동생과 셋이서 골프여행을 갔던 때가 지금 돌아보니 아버지 건강수명의 끝이었다.  팔순 되던 해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폐암 4기 진단받고 6개월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암 진단받기 직전까지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셨다. 암 진단받기 직전까지 건강하셨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듯이 건강수명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임종 케어를 실천하는 대부분의 의사는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암으로 죽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인의 사인은 위에서부터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그리고 노쇠 순이다. 이 중에 암은 1. 죽는 시기를 가늠할 수 있어 미리 준비할 수 있고, 2. 신체의 활동 수준이 말기까지 유지되며, 3. 마지막까지 의식이 또렷하고, 4. 혼수상태에 빠지면 단시간에 죽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암은 통증이 심해서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최근에는 고통을 줄여주는 완화의료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중략 물론 죽는 방식을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암으로 인한 통증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나카무라 씨의 말에 따르면 고령의 암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는 일도 드물다고 한다.

  - 우에노 치즈코 지음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pp.41-42 -


건강수명 이후를 생각하면 차라리 암에 걸려 죽는 것이 낫다는 얘기인데 믿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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