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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04. 2024

투자 vs. 결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투자는 자본을 불리는 방법이다. 투자와 투기는 다르다고 한다. 정당한 이득을 보고자 하는 투자는 긍정적인 용어고,  터무니없이 허황된 이득을 얻고자 하는 투기는 부정적인 용어다. 그렇지만 투자하는 마음과 투기하는 마음을 어찌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까지의 이득이 정당한 것이고 얼마 이상의 이득은 허황된 것이란 말인가? 작은 자본으로도 할 수 있는 주식투자는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하고 있다. 유망한 종목에 장기투자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장래성을 어찌 알아본 단 말인가? 경제신문을 열심히 보면 미래가 보일까? 미래를 보는 능력은 신만이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신은 실존을 의심받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목과 관점으로 투자할 종목을 선택한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전통과 규모가 있는 대형주를 선택하는 보수적인 사람이 있고, 이제 막 주식시장에 진입한 벤처기업을 선택하는 용감(?)한 사람도 있다.


'High risk, high return.'


자신이 종목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 감수할 리스크를 알고 있다. 매수한 직후 주가가 오르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종목은 매수 후에 내린다. 이것은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손실을 감수하고 내린 종목을 파는 것을 손절매라고 한다. 더 큰 손실을 당하기 전에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손절매하고 나면 오른다. 이 때도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손실난 종목을 팔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자연스레 장기투자자가 된다. 장기투자자가 된 이유는 자신의 실책(주식투기에 참여한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목을 잘못 고른 실수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꽤 똑똑한 사람이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다. 들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오를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없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건전하다고 인정한 도박판이다. 공인되었지만 어쨌든 도박판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한심한 종목에 베팅한 자신의 한심함을 인정할 수가 없어 자발적(?)으로 장기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은퇴자도 있다. 행복한 은퇴자의 배우자도 있다. 그렇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행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결혼한다. 그리고 행복해지려고 사람들은 이혼한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혼하는 이유가 다양하듯이 이혼하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혼하면 아무리 알량한 재산이라도 분할해야 한다. 재산분할을 하고 나면 주거를 비롯한 모든 생활이 지금의 수준보다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 정도도 계산 못한다면 바보 거나 멍청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가 애매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배우자 선택은 자신이 했다. 부모가 권하거나 정했을 수도 있고, 친구나 지인이 그 만한 사람 없다고 강추해서 했을 수도 있지만, 최종 선택은 자신이 했다고 봐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이제는 정략혼이나 매매혼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안목이 형편없었음을 인정하기 싫다. 자신이 바보 같았음을 인정할 수가 없다.


주식종목을 잘못 선택했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 자발적인 장기투자자가 되듯이, 자신의 배우자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아직도 행복해 보이는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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