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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26. 2023

잘 살고 있는 걸까?

아파트 지상주차장이다. 나는 배드민턴 출근길이다(아침 9시에 거의 매일이라).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운동을 하다가 서서 쉬는 중인 것 같다. 자전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조깅을 하고 있었나 보다. 아주 짧은 러닝복 아래로 깨끗한 구릿빛 두 다리가 길게 나와 있다. 어디서 저렇게 피부를 깨끗하게 잘 태웠는지 궁금하다. 자세히 보니 구릿빛 피부에 정맥 핏줄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면 근육이 빠지고 살도 빠진다. 뼈와 가죽(?)만 남는다. 지방이 꼭 있어야 하는 발바닥에서 지방이 빠져 발바닥이 아프고(지방패드위축증), 내장 사이사이에 쓸데없는 지방이 쌓여 개구리처럼 배만 볼록해진다. 지방이 빠진 피부에는 정맥 핏줄이 도드라져 잘 보인다. 링거를 꼽거나 피검사를 위해 혈관을 찾아야 하는 간호사들은 수월하게 바늘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혈관이 잘 보여서 드라큘라 백작이나 뱀파이어가 좋아할지 모른다. 아니다. 오래되어 썩은 피라고 쳐다보지 않을 수도...


내 다리를 보았다.


내 다리 역시 근육이 빠지고 지방이 빠져서 핏줄이 잘 보인다. 체중도 많이 줄었다. 갑자기 체중이 줄면 암을 의심해야 하지만, 내 체중감소는  배드민턴과 저녁식사 때문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이즈음 저녁식사를 가능한 일찍 한다. 은퇴를 앞두고 저녁 회식 자리도 현격히 줄어 가능한 얘기다. 체중을 줄이면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몸이 가벼워 관절들의 부하가 줄어들고 혈압도 낮아진다. 13년간 매일 먹던 혈압약도 지난달에 일단 끊어 보기로 했다. 고지혈증 약만 먹기로...


몸이 아주 가벼워졌지만 그렇다고 노화가 멈추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 모두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원인은 노화에 의해 심장에서 먼 다리까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노화에 의한 병은 완치란 없다. 상태를 유지관리하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 배드민턴을 아침마다 치면서 밤에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하지정맥류 증상은 거의 없어졌다. 아마도 종아리 근육이 생겨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은 증상이 더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첫 발을 떼기가 두렵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를 방랑할 때면 매일 발마사지를 받는다. 하루에 보통 두 시간이나 받는다. 마사지 비용이 워낙 저렴해서 많이 받을수록 돈 버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누가 발을 주물러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너무 좋아 마사지받다가 스르르 잠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사지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마사지는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상태에 따라 만족도가 다른 것이 아쉽다.


필리핀의 Angeles City(천사들의 도시)에 Walking Street란 곳이 있다. 아주 유명한 유흥가다. 이곳에는 다양한 술집이 있는데, 거리를 보면서 술이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술집도 있다. 할 일 없는 은퇴한(?) 서양인들이 빠(Bar)에 혼자 앉아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술을 홀짝거린다. 대부분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이다. 숙소에서 자다가 막 나온 행색이다.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궁금해서...


홀로 옆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나를 보더니 말을 건다. 심심했나 보다. 아니면 내가 신기했거나…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예전엔 ‘Engineering Professor’였지만 지금 ’Just before retirement’라고 했다. 은퇴 후와 진배없는 매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냐고 묻는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개인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매일의 내 일상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내 일상을 생각할 시간이... 대학동기들과의 등산이나 골프약속이 없는 평일은 매일 오전 배드민턴을 친다. 샤워까지 하고 나면, 12시 반 이후는 완벽한 자유시간이다. 책을 읽고, 브런치스토리를 쓰거나, 두세 시간 손주들을 맡아 돌보거나, 주변의 중고자동차들 관리한다. 그리고 한 달에 일주일에서 열흘정도는 지금처럼 혼자 방랑길을 떠난다.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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