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을 치다 보면 이기고 지는 것에 아주 민감한 회원들이 있다. 사실 모든 게임과 스포츠가 승부란 것이 있다. 승부에 연연하는 것이 본능이란 생각이 든다. 4살 손주 도민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게임이란 것을 난생처음 하는데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이겨야 좋아한다. 심지어 지면 울기까지 한다. 승부에 따라 상금이나 부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연연하는 것을 보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아닐까? 그렇게 승부에 연연해야만 결국은 살아남아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승부에 별로 연연하지 않던 순하고 낭만적인(어쩌면 멍청한) 존재들은 후대에 유전자를 전하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르신은 이제는 유전자를 전할 이유가 없다. 승부에 집착할 까닭이 없다. 근사하고 우아한 샷이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칠팔십 대에 유전자를 전한 남자들은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83세에 유전자를 남긴 알 파치노처럼. 그것을 부러워해야 하나? 책임과 의무가 새로 부여됐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칠까?
남자 샤워실 라커룸에서 배드민턴 클럽의 경기이사와 마주쳤다. 경기이사가 되려면 실력이 월등해야 한다. 웬만한 코치 수준의 실력이다. 나 같은 초보와 복식게임을 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지만 화목토에는 출석한 회원이 적어 아주 가끔 함께 게임을 할 때도 있다. 네 명을 모아야 게임이 되니깐. 게임이라기보다는 골프에서 필드레슨하듯이 배드민턴 게임레슨을 받는다. 그리고 일 년 넘게 체육관에서 서로를 봐왔으니 …
경기이사: 게임하시는 것 보니까 실력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나: 이 나이에 실력이 늘어야 얼마나 늘겠어요! 신나게 뛰면서 땀 내는 거지요.
경기이사: 승률이 좋아지셨나요?
나: 승률이요? 배드민턴 승률이란 것은 (저 같은 초보는)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른 것 아닌가요? 그리고 파트너의 오늘 컨디션에 좌우되지요. 제 실력과는 무관한 것 같아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파트너 즉 배우자에 따라서 내 인생의 승률이 결정되는 것 아닐까?
배드민턴 복식 파트너를 정할 때 눈치싸움 하듯이, 결혼상대를 고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배드민턴 복식 파트너와는 길어야 15분 정도지만, 배우자와는 몇십 년을 함께 살아야 한다.
내가 못 받는 공 대신 다 받아주고, 강한 스매싱을 갖고 있고, 스매싱과 드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서비스 실수 같은 것은 좀처럼 하지 않는 그런 파트너!
내가 하기 싫은 것 대신 다 해주고, 안정적인 많은 수입을 갖고 있고, 단호함과 유연함을 모두 갖고 있고, 결코 바람피우지 않는 그런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