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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02. 2023

클락공항


필리핀에서 귀국길이다.


동남아를 여행하고 귀국하는 비행기 타는 시간은 대부분 자정 넘어서다. 자정 근처에 공항에 도착하여 기다리다 비행기 타고 밤새 버텨야 한다. 네댓 시간 동안... 그리고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어르신에게 이런 귀국 스케줄은 좋지 않다. 그러나 피할 방법이 별로 없다. 항공사들의 동남아 스케줄은 거의 비슷하다. 점점 밤 비행기 타는 것이 끔찍하다. 거의 한숨 못 자고 새벽에 도착한 날은 아무것도 못한다.


필리핀 클락공항은 최근에 청사를 크게 신축했다. 찾아보니 작년(2022년) 5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단다. 이용하는 승객에 비해 엄청 크게 지었다. 마닐라 아키노 공항의 복잡함에 비해 여유가 많아도 너무 많고, 아직 모든 것이 새것이라 깨끗하여 마음이 편하다. 체크인하고 출국심사받고 게이트 앞까지 왔다.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비행기가 지연출발이라도 한다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승객이 보인다. 이런 공간에서 이 시각에(잘 시간이 넘었다) 아이들은 흥분한다. 아이가 흥분하고 있는 것을 보며 부모는 미소를 짓는다. 아이에게 이런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느낄지 모른다. 나도 예전에 그런 뿌듯함 많이 느꼈다. 가족 배낭여행을 다니던 20여 년 전에...


공항에서 혼자 기다리는 시간처럼 지루한 시간 드물다. 저녁식사 잔뜩 하며(밤새 혹시라도 배고플까 봐) 소주도 한 잔 하고 공항에 왔으니 머리 아픈 책을 보고 싶지 않다. 아이폰을 뒤적이며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눕고 싶고, 자고 싶을 뿐이다. 다음 기회엔 이렇게 자정 넘어 타고 밤새 가는 비행기 안 타고 싶다.


새 청사는 많은 게이트를 갖고 있으나 아직 그렇게 비행 편이 늘지 않아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다. 너무 넓고 천장이 높아 배드민턴은 당연하고 테니스도 가능할 것 같은 공간은 여유가 넘쳐흐른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니 지붕 구조가 독특하고 구조물이 나무다. 이런 현대식 공항건물의 구조물로 나무를 재료로 쓰다니... 어디서 저렇게 큰 목재를 가져왔을까 궁금하다. 얼마나 큰 나무에서 잘라냈을까?


나무로 지어진 공항을 보니 우수아이아 공항이 생각난다. 아이폰의 사진 보관함을 열어보았다. 2016년 1월 29일 우수아이아 국제공항에 있었다. 공항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다시 보았다. 7년 반 전의 기억을 반추하였다. 'Fin del Mundo' 남아메리카 대륙의 땅끝이라는 우수아이아에 2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저녁에 도착했다. 이틀을 자고 우수아이아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늘인 공항의 청사가 아담하고 예뻤다. 공항 내부가 나무를 많이 사용한 공항이었다.


우수아이아. 꼭 다시 가고픈 곳이다.( https://brunch.co.kr/@jkyoon/339 )


호스텔에서 겨우 2박 하며, 온전한 하루는 배를 타고 비글해협을 유람했었다. 근처에 국립공원도 있고 유럽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었다. 35박에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배낭 메고 정신없이 유명 관광지를 호핑 하는 여행 중이었으니...


이제 곧 정년퇴직하면 다시 갈 수 있을까?


네 시간의 야간비행을 걱정하는 내가 최소한 두 번을 환승하며 30시간 이상의 비행을 버텨낼 수 있을까? 환승하며 기다리는 시간까지 더하면 40시간 이상의 여정이 될 텐데...


좋은 곳은 세 번 가야 한다. 그래야 여한이 없다.

우수아이아 가다 죽으면 '객사의 완성'...

https://brunch.co.kr/@jkyoon/551

2016.1.29. 우수아이아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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