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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08. 2023

가을 타나 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사립초등학교와 부설유치원이 있다. 아침마다 8시 전후하여 초등학교 부근은 교통이 엉망이 된다. 가장자리가 아니고 단지 가운데 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하고 폭도 좁은 단지 내 도로로 노란 스쿨버스가 수도 없이 들락거린다. 그뿐만이 아니고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는 부모들의 자가용 행렬도 장난 아니다. 학교 관계자 여러 명이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하느라 분주하다. 횡단보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신 깃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길 건너는 아이들을 보호한다.


나는 9층에 산다. 뒤쪽 베란다 다용도실에서 아침마다 이 진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 큰 노란 버스가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며 브레이크가 끽끽거리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회전하는 자가용들이 여러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신호등 없는 네 갈래 길에서 노란버스들과 승용차들이 서로 엉키면 실타래 풀듯이 차근차근 풀어내야 한다.  


차로 10분 거리인 다른 단지에 살고 있는 딸이 이즈음 만 4살인 손주를 차로 이 유치원에 등원시킨다. 오늘은 딸의 자동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을 9층에서 목격했다. 좀 있더니 손주 손을 잡고 딸이 유치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어제 체육시간에 손주가 손을 다쳐 원감선생님이 정형외과까지 데려갔다는데 아직 얼마나 다쳤는지 듣지 못했다.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는 것을 보니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설마 손주 도민이가 등원하기 싫다고 저렇게 우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웬 아이가 울면서 엄마손 잡고 학교로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가기 싫으면 저렇게 우는 것일까? 학교를 꼭 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난 의문을 갖고 있다. 지식을 얻기 위해 간다기보다는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근원적으로 사회성을 꼭 키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난 의문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은 다 사회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학교를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를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난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교 입학하고 검정고시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검정고시롤 통해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한 대학동기들이 몇 있었다. 머리 깎고, 교복 입고, 콩나물 교실에서 폭력적인 선생들에게 굴복하고 6년을 다녔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시절이다. 만원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기억도 싫다. 특히 테트론(Tetron)으로 만드는 여름 하복은 정말 입기 싫었다. 그 끔찍한 촉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목과 어깨 맨 살에 닿는 것이 싫었는데 더운 여름에 어쩔 수 없었다.

 

유치원 정문에서 손주를 선생님에게 인계하고 돌아 나오면서 선생님께 인사하는 딸이 보인다. 다행이다. 무사히 등원시킨 것이다. 손주 도민이는 유치원 가는 것을 아직(?)은 좋아한다. 딸은 등원을 시켜야 직장을 가든지 재택근무를 하든지 한다. 아침마다 한 살 도은이는 어린이집, 네 살 도민이는 유치원 등원시키는 것이 전쟁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 키우다 보면 인생은 중년기에 들어서고, 금세 노년기에 접어든다.


딸이 집에 들렀으면 하고 바라지만, 주차한 차 안에서 한참을 있더니(아마도 전화로 업무처리 하겠지) 차가 움직인다. 왠지 눈물이 난다(어르신이 가을 타나 봐). 서글퍼서 나는 것이 아니고 딸이 대견해서 나는 것이다. 만 30살 이전에 첫 애를 낳아야 한다며 결혼하고, 세 살 터울 나지 않게 둘째를 낳아야 한다더니 딸을 낳고, 이제는 씩씩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한다.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살아내는 것이 아니고) 딸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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