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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5. 2016

파묵칼레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영화배우 닮은 아주 잘생긴 운전기사


땅덩어리는 큰데 철도가 크게 발달하지 못한 터키에서는 비행기나 장거리 고속버스의 운행이 아주 빈번하다. 저가항공의 비행기 요금이 장거리버스 요금의 세배는 되는 것 같다. 당연히 일반 서민들은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큰 버스회사도 여럿 있고, 지역에 특화된 중소형 버스회사도 무지하게 많다. 그래서 터미날에 가면 여러 회사의 매표소를 들를 수 밖에 없다. 요금이야 서로 경쟁이니 비슷할테고 결국 내게 맞는 운행시간대를 찾기 위해서...

어제 악몽의 세시간을 거쳐 콘야버스터미날에 오자마자 여러회사의 매표소를 돌며 파묵칼레가는 버스표를 찾았다. 터키에서 지금 가장 크다는 메트로라는 회사의 오전 11시 출발표를 샀다. 여기서는 2+1 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우등 같은 고속버스의 제일 앞줄 가운데 자리의 표를 샀다. 우리나라의 우등은 오른쪽 창가자리가 한줄이다. 그런데 여기 터키는 왼쪽 창가자리가 한줄이다. 표를 파는 직원이 왜 혼자가면서 독립된 한자리인 운전기사 뒤의 1번을 사지 않고 2번을 택하냐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낮에 햇빛이 워낙 강하여 서쪽으로 이동할 때는 왼쪽으로 해가 들이친다. 자연 커텐을 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경치를 보지 못한다. 첫줄의 2번 자리는 운전기사보다 높은 위치에서 전면이 한장의 유리로 된 완전통창을 통하여 가장 좋은 시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 자리가 이미 팔렸다면 6번이나 12번을 살 생각이었다. 6번과 12번은 해가 들지 않는 오른쪽 창가자리이고 버스의 필라(기둥)에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터키에서 서쪽으로 이동할 시에는 2,6,12 동쪽으로 이동할 시에는 2,4,10번 좌석이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괴레메에서 콘야로 오던 악몽의 세시간 동안 두번의 담배냄새를 차 안에서 맡았다. 에어콘이 달린 고속버스 안에서 웬 담배냄새? 오늘 알았다. 아주 잘생기고 나이도 있어 보이는 믿음직한 운전기사가 거의 새것인 메르세데스벤츠 버스를 운전한다. 그런데 중간지점인 이스파르타까지 오는 네시간 반동안 6대의 담배를 피웠다. 운전석 창문을 조금 열고...  승객중에 담배를 버스 안에서 피는 사람은 없었다. 고속버스에서는 운전기사가 선장이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의 논스탑으로 운행되는 버스에서 선장이 힘들면 안된다. 결국 선장의 졸음과 피로를 쫒기 위한 담배 냄새를 모든 승객이 용인하는 것이다. 버스 안에 핸드폰 사용 금지경고가 있는데도 심심찮게 운전기사의 폰이 울린다. 그리고 끊임없이 승무원이 차와 커피를 운전기사에게 갖다준다. 마시며, 담배 피며, 전화 받으며, 끊임없이 승무원과 담소하며 운전을 한다. 졸음운전은 할래야 할 수 없을 것 같다.

볼 때마다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생각났다. 영화배우 멜 깁슨이 나이들면 내 앞의 운전기사처럼 될 것 같다. 어쩌면 멜 깁슨의 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영어를 못한다. 중간에 쉬는 틈을 타서 젊은 승무원에게 멜 깁슨의 사진을 찾아 보여줬다. 그리고 화장실 갔다 걸어오는 멜 깁슨 아버지 같은 운전기사를 가리키며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내 팔에 잡혀 같이 사진 찍힌 운전기사는 젊은 승무원의 설명에 미소짓는다.

'내가 잘생긴 영화배우 멜 깁슨을 닮았다고?'

늦은 오후가 되자 서쪽으로 향하는 우리 버스의 통창을 통하여 해가 들이친다. 운전기사의 시야를 위해 숨겨져 있던 햇빛가리개가 자동으로 내려온다. 망했다. 땅바닥 밖에 안보인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통창인 앞유리를 통하여 터키의 경치를 가슴에 담았다. 6시간 걸린다는 데니즐리가 이미 오후 다섯시가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두시간은 더가야 할 것 같다. 두번의 검문과 도로공사 때문에...

비행기의 기장이나 고속버스의 운전기사에게 우리는 얼마동안 우리의 목숨을 맡긴다. 잘 부탁한다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소중한 생명을 맡긴다는 것이 갑자기 신기해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믿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회사를 어찌 믿겠는가? 자본주의의 모든 회사는 이윤추구가 목적이고 우리가 엄청난 광고에 속아 그렇게 믿었던 옥시라는 회사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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