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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22. 2024

떠남과 귀향


여행이라는 은유에는 집과 세계,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규정하는 일련의 젠더적 편향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이광수의 초기 '여행' 서사에서 (남성적) 떠남과 (아내와 가족이 있는 곳으로의) 귀향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특히 이광수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귀향이라는 비유는, 감정적 자기 인식, 부부의 사랑, 국가의 회복이라는 문제와 연결되면서 향후 한국 민족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 실라 미요시 야거의 '애국의 계보학' p. 54 -


소설이나 영화 같은 온갖 이야기에서 집을 떠나는 사람은 보통 남자다. 이야기는 떠났던 남자가 귀향하여 기다리고 있던 여자와 재회함으로 끝난다.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서사로 끝나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왜 떠남은 남자들의 전유물일까?

왜 기다림은 여자들의 전유물일까?


전쟁터로 떠나거나 부역(만리장성이나 경복궁 같은 것의 건설)을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은 남자다. 여자는 아이들을 돌보며 집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얼마(몇 년 또는 몇십 년) 뒤에 남자가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전사하거나 부역 중에 사망하거나 다친다. 인간의 생명이 참 가벼운 시대였다.




"할아버지 어디가?"

"필리핀"

"필리핀 왜 가는 거야?"

몇 달 뒤면 여섯 살이 되는 도민이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66세 노인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 멈칫하고는 이렇게 둘러댔다.

"피나투보 화산 트레킹하러 가는데..."

"화산? 화산은 제주도에도 있잖아?"

"제주도 한라산은 할아버지 이미 세 번 올랐고, 새롭고 특이한 화산을 가보려고."

갸우뚱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저녁 여섯 시에 도민이의 태권도 수련이 끝난다. 도장의 유리문으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엄마나 할머니가 데리러 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다. 도민이는 보통 여섯 시 20분까지 도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관장님이 승합차로 남은 아이들을 집이나 다른 학원으로 데려다준다. 종종 딸의 부탁으로 할아버지인 내가 6시에 맞춰 태권도장으로 간다. 유리문 너머로 할아버지와 눈을 맞춘 도민이가 씩 웃는다. 오늘은 관장님 신세를 지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할아버지를 졸라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사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엄마를 기다리면 된다.


도민이의 가방을 할아버지가 받아주면서 할아버지는 꼭 도민이 손을 잡는다. 도망가지 말라고, 차도에 뛰어들지 말라고 할아버지는 항상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온다. 도민이의 작은 손의 감촉이 참 좋다. 야들야들하다고 해야 할까? 보들보들하다고 해야 할까? 필리핀을 가면 한동안 이 감촉을 느끼지 못한다.




어르신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집을 나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름 성찰해 보았다. 귀향을 하려면 일단 떠나야 한다. 떠남보다 귀향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방랑이라는 남성적 유전자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출이던 출가든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독립하여 홀로 살겠다던 사춘기 시절의 갈망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인이 결혼 40주년을 맞이했는데 딸이 부모에게 축하 전화를 했다. '이혼 안 하고 잘 살아줘서 그래서 자기를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고…'


불우한 가정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가출하여 독립하겠다던 열망이 아직 식지 않아 끊임없이 가출을 실행하고 있다. 고아가 된 지도 3년이 훌쩍 넘었건만...( https://brunch.co.kr/@jkyoon/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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