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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5. 2024

키르기스스탄 3

Almedin Gorge

호스텔 로비의 관광 안내서를 보고 있었다. 아침은 라그만으로 해결했고 오후를 방에서 뒹굴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다. 비슈케크에서 제일 유명한 알라 아르차 트레킹은 내일 월요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관광 안내서에 알메딘 협곡 트레킹 소개가 있다. 알라 아르차보다 가깝고 알라 아르차는 국립공원이지만 여기는 아니다. 지도를 확인하니 알라 아르차와 거의 평행으로 뻗은 바로 옆 계곡이다. 얀덱스 택시 앱으로 확인하니 1000 솜(16,000원)으로 데려다준단다. 호스텔의 리셉션니스트 타냐에게 물었다. 지금 얀덱스 택시 타고 갔다가 올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가는 것은 문제없지만 오는 것이 힘들 텐데...

지금이 하지 때라 저녁 9시까지 훤하고 택시가 없으면 대중교통이 가능한 데까지 히치하이킹하든지 걷든지 하면 되겠지! 지금 정오밖에 안 됐는데...


얀덱스 택시가 딱 한 시간 걸려 알메딘 협곡 입구(포장도로의 끝)까지 데려다줬다. 계곡을 따라 무지 많은 차들이 있었다.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 비슈케크 시민들이다. 계곡을 따라 주차된 수많은 차를 보면서 이따가 나를 태워줄 차는 많네 하고 생각했다.


경치는 끝내준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앞에는 깎아지른 암벽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말과 소들이 한가로이 풀 뜯고 있지만 등산로를 그들과 공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말똥과 소똥이 길에 널렸다. 모양은 끔찍하지만 냄새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혼자 트레킹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어디까지 얼마나 오를 것이냐를 정하지 않고 오르다 보면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린다.


'더 가야 별것 있겠어?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경치 봤잖아. 더 이상 힘들이지 말고 돌아가서 맥주나 마셔!'


초등학고 고학년 아들 둘을 데리고 오르는 부부가 보인다.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담요 한 장과 작은 배낭(먹을 것이 들었을 것이다)을 아버지와 큰 아들이 하나씩 메고 계곡을 따라 오르고 있다. 경사가 너무 완만해서 오른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 계곡은 연한 녹색이 섞인 회색(옥색이라고 봐야 할까)의 빙하 녹은 물이 제법 세차게 흐르고 있다. 결정했다. 하이킹 나온 저 가족이 멈춰 쉬는 지점보다 30분만 더 오르고 리턴하겠다고...


그런데 작은 계곡이 우리의 길을 막았다. 신발을 벗고는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개천이지만 중등산화를 벗고 신기가 너무 끔찍하다. 이리저리 계곡을 건널 지점을 찾았지만 망가진 작은 나무다리 흔적을 보았을 뿐 신발을 벗지 않고는 무리다. 나만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내 앞을 오르던 가족도 포기했다. 가져온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채우고 하산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 오르고 하산에 한 시간 소요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늘 비예보 없는 것을 보았지만 혹시나 하며 우비 판초를 챙겼다. 다행이기는 하나 문제가 생겼다.


판초를 덮어쓰고 걷고 있는 히치하이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히치하이킹을 해야 한다. 아니면 계곡을 따라 포장길을 10 키로 이상을 걷든지...

안전하다고 보이는 히치하이커라도 내 차에 비에 쫄딱 젖은 사람을 태우고 싶지는 않다. 시트가 젖고 실내가 지저분해질 테니…


내 평생 진정한 히치하이킹은 딱 한 번 해봤다.( https://brunch.co.kr/@jkyoon/260 ) 조지아 카즈베기 트레킹 하산 길에서 나를 태워줬던 조지아 여인이 생각난다. 알이 큰 선글라스를 끼고, 크게 웨이브진 머릿결을 갖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자동차의 룸미러를 통하여 본 얼굴을 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면 '사기' 아닐까?


남아공을 친구와 둘이 렌터카로 여행할 때, 고속도로 나들목 부근에서 무수한 흑인 히치하이커들을 보았다. 손에는 돈을 쥐고 흔든다. 돈을 내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도 태우지 않았다. 솔직히 흑인이 무서웠다. 뒷자리에 남루한 차림의 흑인들을 태운다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비 맞은 히치하이커를 태울까 말까를 갈등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다. 일몰시간은 한참 남았고 두 다리도 아직 멀쩡하다. 한 참을 걸어 내려왔더니 비도 그치고 얀덱스 택시도 잡혔다.


오늘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건너편 계곡에 선녀가 앉아있나 했더니 근처에 나무꾼이 있네!
하산 경치가 오르면서 보는 경치보다 못하다.
하산을 결정해 준 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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