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이 끝나가고 있다. 매일 오후 에어컨을 켜고 거실에서 올림픽 경기중계를 본다. 오전에는 체육관에서 엄청난 땀을 흘리며 배드민턴을 친다. 그렇게 폭염경보와 열대야가 연일 계속되는 이 시기에 서울을 지키며 인생을 흘리고 있다.
은메달을 따면 본인뿐 아니라 온 국민이 아쉬워하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사람들도 기억에서 바로 지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금메달에만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이 집중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80년대 우리나라의 베이비 부머들이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던 시절에 유행하던 유머가 기억났다.
딸 아들이면 금메달, 아들 딸이면 은메달, 딸 둘이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란 얘기가 있었다.
아들보다는 딸이 낫고, 이왕이면 딸이 먼저 나와 동생을 돌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가부장 사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시대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큰 병원 작은 의원 할 것 없이 어르신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환자를 모시고 나온 보호자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돌봄이란 역할에 남자보다는 여자가 선천적으로 익숙(?)하다. 어르신의 병원 나들이 도우미도 돌봄의 하나다. 그리고 아직도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직장을 비우기가 힘든 것이라 추측한다.
내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5년 전부터 병원 신세를 정말 많이 지셨다. 안과(황반변성), 비뇨기과(전립샘 비대증과 뇨관암), 외과(맹장염), 치과, 정형외과(압박골절), 정신과(노인우울증)를 비롯하여 입원과 통원치료를 수도 없이 했다. 지팡이 짚고 혼자 걸을만했을 때는 새어머니가 보호자 역할을 했지만, 그 단계를 넘어선 이후에는 나와 동생이 보호자 역할을 번갈아 했다. 아버지는 아들만 둘이었다. 소위 목메달이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였다. 무슨 과를 갔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검사받느라 기다리고, 진료를 받느라 기다리고, 처치받느라 대기하기를 반복하던 상황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아버지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냐고? 시장통 같은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면 불안함이 증가한다. 불안함은 스트레스가 되고 이 스트레스를 남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속으로 '아버지 같은 노인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리니 그런 거지' 하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계속 불평불만을 듣고 있다 보니 나도 짜증이 났다.
"안 기다리고 진료 보는 방법이 있어!"
"그게 뭔데?"
"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 1억을 기부하면, 아버지는 병원에서 특별대우받을 수 있어!"
아버지가 얌전해졌다. 그리고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병원의 진료시스템이 많이 좋아졌지만 거동이 불편해진 당신이 병원나들이를 가야 한다면 누구 손을 잡고 가고 싶나요? 당신의 휠체어를 누가 밀어줬으면 좋겠나요? ( https://brunch.co.kr/@jkyoon/364 )
혹시라도 딸 같은 며느리를 기대하지는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