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을 여행을 준비하던 친구가 걱정을 한다.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하신 노모를 가까운 지방에 사는 누님이 돌보고 있다. 요양병원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이즈음 거의 매일 노모를 방문하는 것 같다. 욕창이 생긴 노모를 보면서 과연 9월 중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비행기표는 이미 6개월 전에 샀다. 조지아와 경유지 카자흐스탄의 체류 기간은 전부 3주가 넘는다. 혹시라도 여행 중에 곧 임종하실 거라는 소식을 듣거나, 임종하신다면 문제가 생긴다. 가까운 동남아라면 공항에 나가 스탠바이하다 귀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지아는 직항편도 없어 24시간 내에 귀국하기 조차 어려울 수도 있다.
‘임종하다’라는 단어는 물론 ‘죽음을 맞이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부모가 돌아가실 때 곁에서 지키다’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단어다. 따라서 ‘그가 임종할 때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임종했다’처럼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좀 어색하긴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 박재역 한국어문교열연구원 원장 ]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건강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메르스에 감염돼 보름 사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자리를 지키지도 못한 자식 된 입장에서 참담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지난 3일 아버지(82)를 떠나보낸 데 이어 오늘(18일) 어머니(83)까지 잃은 A(59)씨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2015.6.18 SBS 뉴스]
메르스나 코로나로 격리병동에서 돌아가시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국어사전에서 '임종'에 대한 예문 중에 '아들은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되었다.'란 것이 있다. 옛날(?)에는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큰 불효의 하나로 여겼던 문화의 소산이다. 충이니 효는 유교문화권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된다. 임금이나 왕이 없는 민주사회가 되면서 충은 '애국'으로 용케 변신했다. 올림픽 중계를 보거나 A 매치 축구 중계를 보면서 우리나라 팀을 열심히 응원하는 것으로 애국이나 충을 표현하는 것 아닐까? 난 그렇게 열심히 보지도 않지만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효는 1인 가구가 대세인 지금 과연 보전해야 하는 가치일까?
존속 살인과 비속 살인의 형량이 크게 차이 난다고 어디서 읽었다. 같은 살인임에도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은 천벌 받을 놈이고, 자식을 살해하는 부모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회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 영아 살해는 흔한 일이었다. 식량이 부족해 이미 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들 선호사상으로 인하여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 부모들에 의해 벌어졌다. 아들 낳은 엄마가 딸만 낳은 엄마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고 심지어 생존이 보장되기도 했다.
부모의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는 것은 패륜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부모와 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https://brunch.co.kr/@jkyoon/670) 연을 끊고 살았는데 장례식 참석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혹시라도 상속받을 재산이라도 있을까 하고 온 것이라고 의심받지 않을까? 이즈음 일본의 장례식 문화가 아주 간소해졌다고 읽었다. 초고령사회가 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졌다. 따라서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이 없어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한국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집에서 천수를 누리다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하는 것을 호상이라 했고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집에서 돌아가시면 집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지역경찰이 오고, 탐문하러 형사가 오고, 현장검증하러 과학수사대가 온다. 동거한 사람이나 자식은 경찰서 가서 조사받아야 한다. 자연사임을 증명해야 한다. 자연사가 입증되어야 부검없이 입관을 할 수 있다. 입관을 해야 화장할 것 아닌가? 그 과정 속에 경찰서와 검찰청을 들락거려야 한다. 서류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호상이 없다. 요양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신다. 결국 집에서 돌아가시면 3일장을 치러야 하는 자식들을 더 고생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집에서 죽지 않으면 객사라고 했다. 객사할 팔자라는 것은 아주 심한 욕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객사가 대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