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도 검사는 심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검사다. 심장박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심장이 항상 비정상적으로 뛴다면 모르겠는데, 나처럼 발작성( https://brunch.co.kr/@jkyoon/795 )으로 심장박동의 이상이 생기는 경우는 심전도 결과 이상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순환기 내과 의사 진료를 받기 직전에 항상 심전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서울대병원 심전도검사실은 아침 8시 검사가 시작된다. 오후에 순환기 내과 진료가 있지만 한창 (주차장이 공사중이라) 붐비는 낮 시간에 검사받고 진료받기 싫어 검사를 일찍 받겠다는 생각에 아침에 서둘렀다. 서울대병원이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8시 2분 전에 심전도 검사실 앞에 도착했다. 심전도 검사실 앞 대기 공간에 앉을자리가 없다. 환자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접수 번호표를 뽑으니 60번이다. 이미 59명이 검사를 대기하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도 많다. 많은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있다. 59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호자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검사실이 열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검사실은 전부 7개다. 검사에는 5분 내외가 소요된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다. 심전도검사는 간단하다. 아프지도 않다. 이런 검사라면 매일 받는다 해도 전혀 부담이 없다. 심전도에 이상이 있을 리도 없다.
검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넓은 복도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키가 큰 어르신과 다부진 체격의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다. 아줌마의 손에는 병원 서류가 잔뜩 들려 있다. 환자로 보이는 어르신은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이고, 어르신에게 팔짱을 낀 아줌마는 아주 의기양양해 보인다.
“걱정하지 마! 아빠 병은 내가 고쳐줄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속으로 '어떻게?' 했다.
'폭삭 속았수다'란 드라마가 인기였던 것을 알지만 넷플릭스 아이디가 없는 나는 보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하여 초기에 한 달 무료시청권을 남발했다. 그 당시 한 달 무료시청을 하고 딱 끊었다.( https://brunch.co.kr/@jkyoon/269 ) 너무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아서 중독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한다. 그만큼 잘 만든다. 그렇게 재미있다. 그래서 난 드라마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드라마 시청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많다고 생각하는 노인이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인생을 드라마 시청 말고, 다른 것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이다.
딸과 손주들과 호찌민 40일 살기 중이다. 숙소의 스마트 TV에 딸의 넷플릭스 계정이 연결되어 있다. 어느 날 저녁 손주들이 다 잠든 뒤에 '폭삭 속았수다'를 열어 보았다. 양관식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안 딸 양금명이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병은 내가 고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오애순이 양관식의 보호자로 병원에서 쩔쩔매는 장면이 있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대형병원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좀 더 빨리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병원 시스템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데, 어르신 환자나 보호자인 어르신은 그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자식이 보호자로 나서 병원나들이를 동반하면 그나마 낫지만 자식들은 직업이 있어 시간내기가 수월치 않다. 그리고 80대 환자의 자식은 50대거나 60대다. 은퇴했거나 곧 은퇴할 나이다. 변화에 적응하기 이미 힘든 나이다.
'폭삭 속았수다'를 처음부터 본 줄 알았는데 네 시간 정도 지나자 끝나 버렸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니, 딸이 12화까지만 보았기 때문에 내가 계정을 열었을 때 13화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를 딸은 어떻게 3/4에서 끊을 수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딸에게 물으니 '폭삭 속았수다'가 재미있지만 12화까지 보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너무 울어서...
그리고 딸이 내게 묻는다.
"아빠도 혹시 아빠가 양관식 같은 아빠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