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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 아레나스에서

by 재거니

푼타 아레나스는 남미 대륙의 최남단 도시다. 마젤란 해협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다. 마젤란 해협은 남미 대륙과 티에라델푸에고 섬 사이의 좁고 긴 바다를 말한다. 마젤란이 처음 이 해협을 통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이 도시 곳곳에는 마젤란의 이름이 도배되어 있는데, 현지인 칠레 사람들의 발음은 내게 '마갈랑'으로 들린다.


남미 대륙의 최남단 땅끝은 푼타 아레나스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야 하는데, 70km 떨어진 Punta Abol까지만 도로가 연결되어 자동차로는 갈 수가 없다. 'Fin del Mundo'라고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는 사실 대륙 남쪽의 큰 섬 티에라델푸에고의 남쪽 끝이지, 대륙의 끝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우수아이아로 몰려든다. 번잡한 관광지가 싫어 푼타 아레나스에 왔다.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와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는 자주 비교되는 도시다. 인구는 7만 명 정도라는 우수아이아보다 푼타 아레나스가 12만 명으로 더 많다. 그렇지만 관광객만 몰리는 우수아이아에 비해 푼타 아레나스는 남극 탐험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서 도시로 진입하다 보면 제법 넓은 산업단지를 지난다. 우수아이아와는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도착한 날 바람이 좀 불었다. 담뱃불 붙이기가 좀 어렵지만 파타고니아의 그 유명한 바람은 아니다. 도착한 다음 날 날씨는 거의 환상이다. 하늘도 파랗고 바람도 거의 없다. '이게 아닌데. 내가 예상한 파타고니아가.' 가벼운 복장으로 길을 나섰다. 잘 정돈된 격자형의 도시는 길을 잃을 가능성이 1도 없다. 일단 해변으로 나갔다. 해협을 따라 공원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끝이 안 보인다. 2km 정도 걸으니 도시의 끝이다. 해협을 따라 길쭉하게 만들어진 도시는 이해하기 쉽다. 흑해 연안의 도시 트라브존( https://brunch.co.kr/@jkyoon/80 )이 생각난다. 단순해서 길 찾기 너무 쉬웠던.




푼타아레나스 공항을 베이스로 삼는 Aerovias DAP( https://dapairline.com/ )란 작은 항공사가 있다. 파타고니아 일대를 운항하지만 특히 남극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갖고 있다. 항공사 홈페이지의 남극 프로그램(Antarctica Full Day)을 열었다. 푼타아레나스에서만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대륙의 긴 꼬리처럼 생긴 킹조지아일랜드로 날아가 남극기지 세 곳을 방문하고 날씨가 허락하면 고무보트를 타고 남극 바다를 유람하고 대기하고 있던 비행기로 당일 귀환하는 일정이다. 올해 첫 비행이 12월 13일이다. 3월까지 매달 두 번이다. ‘한번 가볼까?'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가격이 인당 6,660불이다. 물론 비행 전 푼타아레나스에서의 4박 숙식비와 프로그램 브리핑을 겸한 만찬까지 포함이라지만 남극 당일 투어비가 천만 원이라니...

https://youtu.be/U5CTwbXmLEc?si=dWetXvCWHqy-RRm-




묵고 있는 'Apart Hotel Endurance'의 독특함은 아침식사를 전날 냉장고에 넣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2인용을 넣어준다. 날달걀을 4개나 넣어주는 것을 보면. 저녁을 남은 달걀 두 개로 해치우기도 했다. 아침에 계란프라이를 하고 토스트랑 커피, 우유, 요구르트를 먹고 나면 프라이팬을 비롯한 설거지 할 그릇이 생긴다. 싱크대 밑에 퐁퐁과 수세미가 있다. '설거지는 누가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다해준단다. 처음 3박을 부킹하고 체크인했는데 설거지까지 해준다는 말에 무려 6박을 연장했다.


푼타아레나스 'Endurance Hotel'에서 지구력을 키워볼까나?

p.s.: 벌겋게 녹이 슨 철판으로 호텔 외부를 덮고 있는 것이 ‘Endurance’ 의미와 상통하는듯. 호텔이 살아내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