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하면 잔소리
오늘 Pucon을 떠난다. 뮐러 씨 호스탈에서 세 밤 자고, 6시간 버스 타고 남쪽 푸에르토몬트로 간다. 푸에르토몬트는 벌써 세 번째다. 고향 가는 듯 마음이 편하다. 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는 Ibis 호텔에서 2박을 할 예정이다. 푸에르토몬트에서 이 호텔만큼 방랑자에게 편리한 호텔 또 없다. 공항까지의 셔틀버스가 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출발하고, 장거리 시외버스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바릴로체로 국경을 넘는 버스도 출발한다. 교통의 요지인 푸에르토몬트 버스터미널과 붙어 있으니 말이다. 호텔 건물의 형태상 어떤 방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칼부코 화산까지 보이면 더 이상 전망이 좋을 수 없다. 가성비면에서 최고다. Ibis에서 럭셔리를 기대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칠레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하는 어느 유튜브 동영상에서 Pucon을 강추하길래 오기는 했는데, 정작 3박을 머무는 동안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다. 비야리까 화산을 등정할 의욕도, 급류 래프팅이나 카약킹을 할 마음도, 고기를 먹어 영양보충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다. 내 방과 공용식당으로 사용하는 거실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AI로 우울증 검사를 하니 초기 위험 단계라고 한다. 내가 지금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건가? 심심한 건가?
와이파이가 있으니 심심하지는 않다. 맥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Comfort show'란 사람들이 위로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반복 시청하는 콘텐츠를 의미한다고 한다. 박찬욱 영화감독의 최근 인터뷰 기사에 박감독의 comfort show가 '윤 전 대통령의 각종 비리 의혹 관련 유튜브 영상들'이라고 했다. 내 comfort show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유튜브를 켜면 제일 먼저 시청하는 것. BWF(Badminton World Foundation)의 최근 경기 하이라이트, 다음 행선지에 대한 여행유튜버들의 영상, 드론으로 촬영한 멋진 경치들이다. 아주 comfort 하다.
그러니 심심하지는 않다. 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외로움이라니...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려니 한다. 나와 같은 날 체크인 한 백인 노인은 볼 수가 없다. 매일 어딘가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 같다. 숙소 주인 뮐러 씨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니 스페인어권 노인은 아닌 것이 확실한데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궁금하네.
저녁을 먹고 들어와 테라스에서 석양을 한 참 즐기고 있는데, 노인이 대문을 열고 귀가한다. 드디어 처음 말을 걸었다. 어디 갔다 오냐고? 넌 어디서 왔냐고? 벨기에란다. 나이는? 64. 나는 몇 살이냐고 묻길래 67이라고 했다. 내가 자기보다 젊어 보인단다. 속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머리 벗어진 거야 비슷(내가 더 벗겨졌는지 모른다.)하지만 벨기에 어르신은 어깨가 구부정하다. 그 시원치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떠나는 날 비야리까 화산 등반을 한다니... 그는 어쩌면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혼자 살던 자신의 집을 정리하고, 요양원(실버타운)으로 입소하기 전에 마지막 남미 여행을 온 것인지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내겐 완전한 comfort show time이다. 운전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지만 이렇게 편하게 경치를 흘려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진다. 2층 버스의 제일 앞자리, 전망 가장 좋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옆에는 청바지에 어그(?) 부츠 같은 것을 신고, 백발을 길게 펄럭이는 여인이라고 해야 할지 노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이 앉았다. 중간중간 계속 전화가 오고 가는 것을 봐서는 아직 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백발을 그렇게 길게 유지하는지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하겠네...
푸콘에서 푸에르토몬트 직행인 줄 알았는데, 비야리까, 롱코체, 오소르노, 푸에르토바라스를 거쳐가는 것이었다. 높고 긴 버스가 도시의 좁은 길에서 교행하고 회전하는 것을 보면 예술이다. 가로수들을 스치면서 지나간다. 가로수의 도로 쪽은 이층 버스가 지나다니는 형상으로 다듬어져 있다. 비야리까 터미널에서 엄마와 딸의 이별장면을 목격했다. 딸을 버스 태워 보내는 엄마의 표정에 내가 눈물 날 지경이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가슴이 아린 것이 지금 내 눈에 보인다.
며칠 전에도 이런 광경 본 적 있다. Puerto Aysen 버스대합실에서 나는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 큰 백인 아버지와 고등학생 정도의 딸이 대합실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표를 사고, 그 둘의 이별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버지의 눈빛과 딸의 고개 끄덕임을 통하여 무슨 말을 주고받고 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가볍게 포옹을 하고 키 큰 아버지가 딸의 이마에 입맞춤하는 것을 보니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건강수명이 많이 남지 않은 어르신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자식과의 관계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결코 좋을 수만은 없다.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와 자식이 생각하는 좋은 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아니 다르다는 인식을 부모가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느 정신과 의사가 그랬다. 나이 든 부모는 자식을 자주 보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결코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애인을 만나고 싶지 부모와 함께 있고 싶겠는가? 친구와 얘기하고 싶지 부모의 잔소리를 흘려듣고 싶겠는가? 두 번하면 다 잔소리다. 어르신 부모는 자식을 자주 보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의 독립한 자식은 부모를 최소한으로 만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생각 아니 통찰에 난 격하게 동감한다.
그렇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