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파타고니아가 아니라 올 마음 1도 없었는데 안 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르헨티나 국내선 비행기가 거의 전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한다. 푼타아레나스에서 시작된 파타고니아 버스이동이 바이아블랑카에서 끝났다. 남미여행을 패키지로 돌고 있는 친구부부와 주말에 우수아이아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수아이아 가는 비행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밖에는 없다. 무려 3시간 40분이나 날아간다. 우수아이아에서 4박 하고 비행기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야 한다. 비행기로 아르헨티나를 벗어나려면...
그리고 천천히 페루의 리마와 애틀랜타를 경유하여 이번 파타고니아 방랑을 끝낼 생각이다.
바이아블랑카에서 탑승한 LADE 비행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 AEP 공항에 내렸다. 매우 붐비는 공항이다. 청사를 나오자 택시 필요하냐고 웬 남자가 붙는다. 그래서 이런 공항이 싫다. 택시승차장에 택시들이 줄 서 있는데... 택시승차장 너머로 Cabify(스페인에서 시작된 자동차 공유(?) 서비스로 아르헨티나에서는 우버보다 선호된다)와 Uber 승차장이 있다. 우버를 호출했다. 우버승차장으로 가기도 전에 우버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하는 도시다.
그만큼 화려하고 공연이나 볼 것이 많다는 도시다. 10년 전에 딱 두 밤 잤다. 특별히 좋았던 기억은 없다. 특별하다면 'Fuerza Bruta'( https://brunch.co.kr/@jkyoon/16 )란 공연과 탱고 디너쇼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할 뿐이다. Fuerza Bruta 공연은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진 종합예술공연이다. 그때의 감동이 떠올라 다시 보고 싶기도 한데, 공연스케줄을 확인하니 목금토일 공연이다. 이번에도, 아르헨티나를 떠나는 다음 주에도, 시간이 어긋나 기회가 없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방에 넣자마자 근처 한국음식점을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2.5km다. 해가 이미 많이 기울었고 기온도 높지 않다. 걷기 시작했다. 이런 대도시를 걷노라면 신경이 곤두선다. 다행스러운 것은 곳곳에 남녀 경찰들이 서있다. 총 대신 몽둥이를 차고,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방탄효과가 얼마나 있을지가 궁금하다.
대로변의 가로수는 한창 무성할 한 여름이다. 보라색 꽃과 주홍색 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오벨리스크가 도로 한 중간에 우뚝 서있다. 오래된 큰 건물의 벽면 전체에 에비타의 형상이 보인다. 밤에 불이 들어오면 근사할 듯. 신호등 앞에 축구유니폼 상의를 입은 남자가 엄지 척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뒤의 건물 벽면에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메시가 크게 그려져 있다. 아르헨티나는 축구에 진심이라 쓸데없이 아르헨티나 사람과 축구 얘기는 하지 말라던데...
저녁시간의 도시는 점점 활기가 넘쳐난다. 대형스크린 광고판들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도로변 구석구석에 노숙자와 깡통을 앞에 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파타고니아 코모도로리바다비아 부근에서 원유도 나고, 팜파스 평원에는 엄청난 곡물들이 자라나고, 소와 양을 비롯한 많은 가축들이 방목되는 풍요로운 땅을 가진 백인들의 나라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의문이다.
분식도 하는 한국음식점에서 한국에서는 결코 주문하지 않는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이틀을 자는 동안 한국음식점을 무려 세 번 방문했다.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소고기나 양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 선택할 수 있다면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다. 그렇다면 왜 떠돌고 있는 것일까?
우수아이아 가는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3시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6:40분 우수아이아 공항에 도착한다. 허츠 렌터카를 예약해 놓았다. 공항이 아닌 우수아이아 시내 사무소에. 시내사무소는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문 닫기 전에 렌터카를 받아야 한다. 오늘 머물 숙소를 아직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렌터카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숙소를 정할 생각이다. 지금 우수아이아는 피크시즌이다. 어제 식사한 한국음식점 사장님이 우수아이아 물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두 배니 필요한 것 있으면 여기서 다 사가라고 충고했다.
자동차를 렌트한 목적은 리오그란데와 우수아이아 사이의 도로를 직접 운전하고 싶어서다. 10년 전 벤츠의 소형버스로 이동하면서 마음먹었다. 기회가 온다면 이 길을 내가 직접 운전하며 달리고 싶다고.( https://brunch.co.kr/@jkyoon/31 ) 이번 파타고니아 방랑에서 하고 싶은 세 가지 중의 마지막이다. 특별한 이유 없다. 그냥 하고 싶었다. 안 하거나 못하고 죽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것도 10년 전에 마음먹은...
우수아이아는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 숙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렌터카를 인수하면 우수아이아를 벗어날 생각이다.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Tolhuin( https://brunch.co.kr/@jkyoon/337 )이나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리오그란데로 이동할 생각이다. 렌터카를 못 받으면 우수아이아 아무 데나 찌그러져 자야겠지!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지 걱정이다. 비행기가 지연되면 끝장이다.
신을 믿지 않는 나지만 이런 때는 나도 기도하고 싶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 생각해 보면, 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신께 기도하고 싶다니 아이러니 아닌가? 아무려면 이 한 몸 누일 장소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