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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Nov 17. 2020

불편한 열심

[까칠한 페페씨의 생활의 발견] - 19

운동을 하기로 굳은 결심을 한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시기는 추운 겨울. 한 번이 무너지면 계속 무너진다는 생각에 새벽 찬바람을 뚫고 피트니스에 도착한다. 그날 첫 번째로 만난 리셉션 그녀의 첫인사. 오늘 추운데 대단하시네요. 엄청 부지런하세요. 내 생에 첫 부지런 시도가 세상에 유난스러운 부지런함이 되었다. 날씨 안 좋을 때는 안 오는 게 나을 거 같다.

직장을 그만 두고 게을러질까 싶어 동네 카페에 나가 책을 읽던 무엇을 하던 일단 집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카페 분위기도 맘에 들고 새로운 루틴에 적응할 수 있겠다 싶다. 하루하루 지나며 카페 직원들과도 눈인사가 트일 무렵, 그녀가 한마디 한다. 오늘도 오셨네요. 불편해 진다. 반갑게 어서 오세요 하면 딱 좋으련만. 하루씩 걸러 올까. 

골프 연습을 시작하다. 일주일 2번 레슨. 개인 연습을 할 시간이 없고 레슨이라도 눈 꾹 감고 나가자. 하지만 필드에서 나의 골프 실력은 거기서 거기. 한마디씩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느니? 다음 번 필드에서는 조금 향상된 듯. 또 한마디씩 한다. 연습 엄청 열심히 하는구나. 뭐 어쩌라는 거니. 

운동을 하기로 한 과체중의 남자, 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해 주는 최고시설의 피트니스에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다. 그의 몸은 전보다 훨씬 날씬해져 있었다. 슬림해 지기까지는 동네 체육관에서 부지런히 운동을 했단다. 보는 눈들이 없는 곳에서 괜찮은 수준을 만든 후 보이는 곳에 등장하다.


왜 우리는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데 부담을 느낄까. 노력한다는 점이 재능이 부족하다는 쪽으로 비춰지는 게 싫다. 티핑포인트에 이르기까지의 초조와 짜증은 숨겨 놓고 슬렁슬렁 하는 데도 잘 하는 사람으로 보여 졌으면 싶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뭔가를 잘 하는 이는 그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다고 확신해도 무방하다. 살이 빠진 사람은 식탐을 이겨내는 시간이 있었던 것이고, 근육을 만든 이는 중력을 이기는 시간을 투입한 것이다. 어느 수준에 닿기까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간은 얼마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스스로와 싸워 나갈 때 시간이야 말로 믿음직한 우군이다. 무얼 어찌해야 할 지 모를 때라도 시간을 통과하는 전략은 유효하다. 재능이 없어 보이면 어떠한가. 세상 누가 뭐라던 내가 공 들인 시간은 나의 편이다. 나는 오늘도 안 써지는 노트북 위에서 온갖 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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