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페페씨의 생활의 발견]
나의 난자는 냉동보관 중이다.
30대 어느 때인가, 난자 냉동이라는 걸 듣게 되었다. 그 당시 도대체 언제 결혼할지 알 수 없던 나는 생식기의 기능이 떨어지기 전에 난자를 냉동해 놓으면 마음이 가벼울 듯 했다. 당시 친구를 통해 알아 본 의사 선생님의 의견, 당장은 기술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으니 빨리 남자친구를 만들고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훅 시간이 지나가고 난 결혼하지 못했고 출산의 경험을 갖지 못한 40대가 되었다. 퍼뜩 난자 냉동이 떠올랐고 병원을 직접 찾았다. 다행히도 기술은 아주 안정적으로 진보해 있었다. 이번에는 내 나이였다. 친절하지만 아주 객관적인 의사 선생님은 내 나이가 통상 난자 냉동을 시도하는 마지막 나이에 근접해 건강한 난자를 채취하기가 어렵고, 설사 채취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착상을 시도하게 될 즈음에는 내 자궁의 나이가 이미 늙어 냉동난자를 쓰지 못할 수 있겠단다. 그녀의 암묵적인 조언은 가능성이 낮은 힘든 시도를 그래도 하겠느냐.
흔히 난임 여성들이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기 위해 거치는 난자 체취 과정은 쉽지 않다.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였다. 의지가 있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약간 슬프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난 호르몬 주사를 포함해 사이사이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난자채취에 운 좋게 성공했다. 여유 있게 한차례 더해 놓자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지만 그 과정을 다시 할 자신도 여유도 없어 다음으로 미루고 시간이 지나갔다.
난자 냉동기간은 통상 5년, 그 기간이 지나면 의학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도록 기증한다는 서약서를 썼던 기억이 가물가물할 즈음 병원에서 보관 기간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내가 원하면 보관 기간은 다시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결혼이었다. 즈음하여 난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는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에 법이 바뀌어 법적 혼인이 아니면 나의 냉동난자는 쓰일 수 없게 되었다. 젠장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아 난자냉동을 해 놨더니만 결혼하지 않아 그걸 쓸 수 없다니. 매번 간당간당 상황을 모면하는가 싶으면 또 매번 살짝살짝 다른 걸림돌이 치고 들어온다. 이 때마다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 가능성이 낮더라도 그냥 해 보느냐,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른 데 에너지를 쏟느냐.
누구는 그냥 한번 해 보는 건 여러모로 별로라고 말한다. 누구는 뭐라도 한번 해 보는 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말한다. 양쪽 모두 산뜻한 선택은 아니다. 도대체 우리 삶에 산뜻한 선택의 기회는 몇 번이나 있는 것인지, 있기는 한 것인지.
라식 수술을 47살에 했다. 더 이상 콘택트렌즈를 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렌즈삽입술 상담을 받으러 갔더니 뜻밖에 라식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15년 전 라식 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고도근시인 나는 각막을 많이 절개해야 했고 내 각막 두께로는 수술이 불가하다는 진단이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렌즈 삽입술, 렌즈 삽입술이 초기 단계라 안정적이지 않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30대 중반에 못했던 라식을 40대 후반에 하게 되다니 의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물론 나이 들어 고도근시 라식을 하다 보니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이 많았다. 30대에 할 수 있었음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불가능이 가능이 되었으니 무척이나 감사했다.
삶의 선택이 주어질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원과 에너지를 배분한다. 매번 현명한 선택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maginal한 상황으로 나에게 온다. 이제껏 살아 온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