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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Feb 26. 2023

캐나다에는 성차별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린 시절, '서양 국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멋있는 수트 ('양복'이라고 하면 안 되고, 꼭 '수트'라고 써야 할 것 같은 느낌) 혹은 세련되고 시크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한 손에는 노트북 가방 다른 한 손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점심은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고, 주말엔 가벼운 차림으로 공원에서 큰 개와 함께 조깅을 하는 모습.


그리고 성차별은 절대 없을 것 같은 곳.


그게 내가 갖고 있는 서양 국가에 대한 이미지였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


그리고 내가 지난 10여 년간 직접 경험한 캐나다는 실제로 신사들이 많고 여자를 존중하는 곳이었다.


젊은 여직원한테 허드렛일을 시킨다든가, 남자 동료가 여자 동료의 외모나 나이를 두고 농담을 던진다든가, 상사가 "힘들지?" 하며 여직원의 어깨에 쓱 손을 올린다든가 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 내 선배들은 임신 중에 승진을 하기도 했고 육아휴직을 쓰는 것에도 자유로웠으며, 상사한테 술을 따른다거나 노래방에서 부장님과 부르스를 춰야 하는 그런 일은 결코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성차별이 없는 건 아니었다.



1. 캐나다에선 결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성(姓)으로 바꾸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건 성차별이라고 보기보단 그저 오래된 하나의 문화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의도에 의문을 갖는다. 나는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라 내 성을 바꾸지 않았지만 내 주위에선 그런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결혼과 동시에 성을 바꾼 내 친한 동료는 그로 인해 처리해야 하는 여러 프로세스가 얼마나 귀찮은 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등 신분증을 갱신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은행, 국세청, 보험사, 학교, 직장 등에 각각 연락을 해서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려야 하는데 이게 영 귀찮은 일이 아니라고.


왜 결혼하면 여자가 성을 바꿔야 해?



2. 남자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Mr.이지만, 여자는 결혼 전엔 Miss, 결혼 후엔 Mrs.로 호칭이 바뀐다. 지금은 남자의 Mr. 격인 Ms.라는 새로운 호칭이 통용되고 있어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Ms.로 통일해서 쓸 수 있지만, 여전히 Miss와 Mrs. 역시 흔하게 쓰인다.


왜 여자는 결혼 전후로 호칭이 달라져야 해?

(그럼 돌싱은 미스야, 미세스야?)



3. 부부가 서류 등에 공동으로 이름을 쓰는 경우 (예: 아파트 공동 명의), 주로 남자의 이름을 먼저 적는 관습이 있다.


집을 사고파는 등 서류 작성을 할 때 남편 대신 내가 대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자연스레 내 이름을 먼저 알려주곤 했지만, 그럼에도 중개인, 변호사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류에 꼭 남편의 이름을 먼저 적었다.


왜 서류상에 꼭 남자 이름을 먼저 쓰는 건데?




캐나다 정부는 성차별 없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육아 공평 분담, 여성 창업 지원 등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발표 및 지지해 왔다.


실제로 캐나다 국가의 가사 중 성차별 논란을 계속 받아 온 "all thy sons"라는 부분은, 2018년 1월 31일 마침내 "all of us"라고 변경되었다. (여기서 'thy'는 고어로 'your'와 같은 뜻)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OECD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캐나다의 남녀 임금 격차는 16.7%로 OECD 국가 중 높은 순으로 7위였고, 이는 임금 격차가 5% 미만인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 비하면 10% 이상 높은 수치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임금 격차 1위 - 31.1%)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분명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내 다음 세대가 사는 사회는 한국, 캐나다 할 것 없이 성차별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출처: unsplash.com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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