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의 산부인과 방문기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산부인과 방문 일정을 잡았습니다.
간단한 검사 한번 받기가 너무 어려운 곳에 살고 있는 터라 한국에 갈 때마다 필요한 병원 투어는 마치고 오는 게 좋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그날 병원 대기실에서 저는 깨달았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는 걸요.
결혼 후 10년이 넘었지만 딩크족인 저는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산부인과에 갈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산부인과는 꼭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여러 검사 등을 위해 20대 혹은 그전에도 충분히 방문할 수 있는 곳이죠.
한국은 만 20세 이상의 여성에게 2년 주기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쯤 캐나다로 온 저는,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몇 번 가보긴 했지만 그간 제가 간 곳은 산부인과는 아니었어요. 이는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이 한국에 비해 세분화되어 있어, 산부인과 역시 두 개의 진료과로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저는 '부인과'는 가봤지만 '산과'는 가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마흔이 가까워오는 나이에 난생처음 '산부인과'라는 곳엘 가보게 되었네요.
일반적으로 병원은 (정기검진 제외) 어떤 질환이 있거나 혹은 그 질환이 의심돼서 방문하는 곳이니만큼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되는 곳은 아니지요.
제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보니, 혼자 온 사람, 친정엄마와 함께 온 사람, 남편/남친과 함께 온 커플, 만삭의 임신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대기실에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수많은 진료과 중 오직 '산과'만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과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슬픔'이 공존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신 준비를 위해 병원을 함께 방문한 커플의 설렘
고대하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의 무한한 기쁨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벅찬 감동
출산을 앞두고 걱정과 설렘이 교차할 긴장되는 마음
그리고...
난임과 싸우며 하루하루 피 말리는 것 같은 고통과 애가 타는 절실함, 아이를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세상 무너져 내릴 듯한 절망감까지...
그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이 다 있는 곳.
그리고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내 앞에 앉아 손을 꼭 맞잡고 있는 이 커플은 어떤 사유로 병원을 방문했을지,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저 만삭의 임신부는 지금 어떤 감정일지, 그리고 그 임신부를 대기 시간 내내 힐끗거리던 내 옆의 여성분은 어떤 사연을 가진 분일지 생각하니, 그저 해맑게 폰게임이나 하며 기다리려던 마음이 쏙 들어가더라고요.
그냥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산부인과에서 참 여러 생각을 했던 날이었습니다.
모쪼록 예쁜 아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찾아오고,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분에게는 건강한 아이가 세상 빛을 보게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