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반송사유
작년 12월 초, 언니가 택배를 하나 보냈다.
배편으로.⛴
그동안 한국에 있는 가족과 택배를 주고받을 일이 있을 땐 늘 항공편을 이용했었는데, 배편의 저렴한 배송비의 (악마의) 유혹에 언니가 걸려들었다. 급한 물건, 상할만한 물건이 없으니 반 이상 싼 가격으로 택배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J야, 오늘 택배 보냈어. 보통 3달쯤 걸리는 데 지금 파업이랑 겹쳐서 더 걸릴 수도 있대.ㅋㅋ”
“있잖아, 여긴 빠르면 2월 말부터 벚꽃이 피거든? 어디 벚꽃이 먼저 피나 택배가 먼저 오나 한번 보지 뭐.”
그렇게 택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내던 1월의 어느 날, 언니한테 카톡이 왔다.
"어쩌면 훨씬 일찍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벌써 캐나다 도착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싶으면서도 순진한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그간 아껴두었던 마지막 초코칩쿠키를 뜯었다.
하지만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
어느 날, 배송조회에 들어가 보니 "수취인 거절로 배송불가"라는 메시지가 있다며 언니가 연락을 해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택배는 우리 집에 아예 온 적도 없었다.
엄마는 나보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다.
"아니이~ 거기 전화해서 얘기 좀 해봐. 네가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 설명하고 택배 반송하지 말고 다시 보내달라고 해~"
우리 엄마는 딸이 캐나다에 산 지 14년이 넘도록 캐나다를 아직도 이렇게 모른다.
엄마, 미안한테 여기 캐나다라는 곳은 그런 게 하나도 안 먹히는 곳이야. 그냥 '쏘리~난 잘 모르겠음' 시전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여긴 그런 곳이야.
하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할 것 같아 다음날 아침 우체국에 전화했지만 역시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전화받은 직원은 내 답답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그 메시지 자체가 잘못 올라가는 경우가 있으니 며칠 더 기다려 보라고, 참 친절하지만 어떠한 확신도 없는 답변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결국, 그 택배는 진.짜.로. 반송되었다.
반송된 것도 어이없고, 반송이유는 더 어이없는데, 심지어 반송비까지 지불해야 하는 언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좀 저렴하게 택배 보내보겠다고 시도했다가 보냈던 그 박스를 고대로 다시 받아 추가비용까지 냈다.
그렇게 왔다리 갔다리 태평양을 두 번이나 건넌 그 택배는 세 번째로 태평양을 건너 (이번에는 항공편으로) 3월의 마지막날 마침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안녕? 하기스?
널 정말 애타게 기다렸어.
초코칩쿠키가 너무 먹고 싶은데 여기선 팔지를 않고 스낵면은 한 봉지에 10불이라 사 먹을 엄두가 안나.
그리고 언니가 립밤을 보내준대서 마지막에 쬐끔 남은 거 끄트머리까지 알뜰하게 쓰면서 기다렸거든. 그런데 겨울이 다 갔네?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왔으니 됐어.
남편은 ‘김치시즈닝’ 통을 집어 들고 나한테 물어본다. 이게 뭐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낸들 알간?
이젠 배스킨라빈스랑 곰표에서 빼빼로 같은 것도 만드나 보네. 그리고... 인절미땅콩? 너는 누구니?
하나하나 맛볼 생각에 넘 신난다. 이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