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내다
*지난 포스팅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현실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매주 쓰는 보고서를 날짜와 내용만 조금 바꿔서 쓰고, 어차피 하게 되지도 않을 프레젠테이션 자료 및 PPT를 준비하고 (나는 실제로 팀의 막내라는 이유로 준비해 간 프레젠테이션을 회사 다니는 동안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또 원하지 않는 즉흥적으로 계획된 회식.
그렇게 반복된 현실 속에서, 뉴욕에서 했던 꿈 얘기는 다시 꿈일 뿐인 얘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 지금 취업 난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라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그리고 나만 힘든 거 아니라고 다들 그러더라.'
다들 힘들면서도 참고 버텨내는 데 나만 유난인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은 씁쓸했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일단은 조금 더 버텨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나는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내 사수였던 사람한테 성희롱을 당하고 있었는데, 나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순진했던 나는 어디까지가 받아들일 만한 농담이고 어디부터는 끊어내야 맞는 건지를 몰라 매번 그 사람의 농담 섞인 말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왜 이런건 교과서에 안 나오나요?)
우리 부서는 2인 1조 형식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나와 한 조로 움직이는 그 사람은, 내가 모든 걸 배워야 하는 직속 사수인 데다가, 같이 외부로 일을 나갈 때는 내가 그 사람 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 입장이라, 나는 늘 부탁하고 도움받는 그야말로 '을'의 입장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해도 불편하다는 내색을 하는 게 더 어려웠다.
특히 나는 여대를 나온 사람이라 더더욱 그런 경험이 적기도 했고, 혹시라도 내가 발끈했다가 '역시 여대 나온 애들은 안돼'라는 얘기를 듣는 건 아닐까 유독 더 조심하고 참아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선을 넘어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결정적으로 못 버티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실적 좋은 직원들에게 괌으로 인센티브 여행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인센티브 명단에 올랐고, 그 사수는 명단에 오르지 않아 같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팀의 다른 사람들과도 여행을 같이 갈 만큼은 친하지 않아서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며칠은 무난히 흘렀다. 한 남자 선배 A가 자기네들 (남자들)은 저녁에 스트립바에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서 싫다고 거절한 일은 있었지만.
그런데 진짜 사건은 귀국 이틀 전날 밤에 일어났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비용을 대고 보내 준 여행이니만큼 직원들 단합을 위해 미리 짜인 프로그램도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마지막 날 밤 팀별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장기자랑 하루 전 날 우리 팀은 바닷가에 모여 맥주를 한 캔씩 하며 장기자랑에서 뭘 하면 좋을지 의논 중이었다.
그런데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나랑 꽤 친했던 선배 B가 자기한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면서 이거는 J 네가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자기가 어제 갔던 스트립바에서 스트립걸 의상을 빌려다 줄 테니 나보고 그걸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추라는 거였다. 나는 이미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B 선배는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그 선배는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내가 꽤 의지하던 점잖은 (줄 알았던) 선배였는데, 그런 믿었던 선배마저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는 게 나는 치를 떨 만큼 증오스러웠다.
내 사수의 지속적인 성희롱도, A 선배의 스트립바에 같이 가자는 어이없고 불편한 제안도, 그래도 그간 쌓인 내공으로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버텨왔는데, 나는 B 선배의 장기자랑 아이디어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바보같이 화도 못 내고 그대로 호텔 방에 들어와 한참을 울었다. 당시 호텔 방 안에서는 국제 전화가 되지 않아 나는 로비에서도 제일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를 찾아서 당시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숨이 넘어가게 꺽꺽 울면서 상황 설명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내 태도를 싹 바꿨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예전같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그저 어리고 순진한 모습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회사에서 전무님 이하로 제일 높은 분이었던 본부장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동안 내가 겪어 온 고충, 괌 여행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얘기하며 본부장님에게 일종의 고발 및 도움 요청을 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 오전 전체 미팅에서, 공식 미팅이 끝난 후 본부장님은 여자들은 모두 나가고 남자들만 남으라고 하셨다. 남자들끼리만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는 모른다. 강경책을 쓰셨을지, 회유책을 쓰셨을지, 아니면 여직원 중에 하나가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며 그냥 사실 전달만 하고 방관하는 입장을 보이셨을지 그 자리에 없었던 나는 알 길이 없다. 내 이름을 공식적으로 말씀하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메일 고발자가 나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후 나에게 스트립바를 같이 가자고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던 선배 A에게도, 나에게 그런 옷을 입고 춤추는 게 어떻겠냐고 거지 같은 제안을 했던 선배 B에게도 사과를 받아냈다.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사수는 자기는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발뺌하면서 사과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 그런 말이나 행동들을 더 이상 내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최소 성희롱 지옥에서는 벗어났지만, 나는 괌 여행 이후 회사에 그나마 남아있던 한 톨의 마지막 정마저 떼어낸 지 오래였다.
그때쯤 그 전 해에 뉴욕 동생 K와 나눴던 대화와 희망이 다시 몽글몽글 올라왔다. 회사에서는 이미 정이 떠났으니 그만두는 건 문제도 아니었고, 제일 발목을 잡았던 나이 문제도 오히려 생각해보면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오늘은 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라고.
그리고 나는 2009년 여름, 사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