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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Oct 09. 2022

30대에 유언장을 쓰는 나라, 캐나다

친구가 유언장을 썼다


작년 어느 날,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한국인 친구 S한테 전화가 왔다.


남편과 유언장을 작성하려고 하는데, 비상시 연락망에 내 이름을 써도 되겠냐고 그녀가 물었다. 만약 부부가 동시에 사고라도 났을 때, (S의 가족이 한국에서 오는 동안) 임시로 아이를 맡아 줄 수 있겠냐는 부탁과 함께.


친구의 딸아이는 나와 내 남편을 유독 따르는 데다가, 나는 한국어와 영어가 둘 다 가능하니 비상시 친구 부모님과 현지 기관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도 해줄 수 있어, 나 이상의 적임자가 없다며 부탁해 온 것이다.


그에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이쯤 되면, 내 친구가 혹시 큰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 친구와 그의 남편 모두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마지막 인사와 당부'를 전하는 뜻으로 유언을 생각하는 한국의 문화와 달리, 이곳 캐나다에서는 유언이 그저 "만약"을 대비한 합의서/의견서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언이 영어로 Will이라는 것만 봐도, 유언을 작성한다는 건 어떤 의지표명의 역할이 더 강하다는 뜻 아닐까?


특히 결혼을 해서 공동 자산이 생기고, 아이가 있는 부부라면, 30 혹은 20대 젊은 나이에도 미리미리 비상시를 대비한 계획을  놓는 것이  나라의 문화이며,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 찾아볼  없다.



실제로 캐나다는 매년 10월 첫째 주를 "유언장 작성하기" 기간으로 지정해 유언장 작성 혹은 기존 유언장의 업데이트를 고려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BC주는 2020년 기준, 50%의 국민이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이는 2018년 대비 6% 증가한 수치로, 매년 그 비율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2021년 12월부터는 전자 유언장도 같은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유언장 작성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출처: https://www2.gov.bc.ca/gov/content/life-events/death/wills-estates/make-a-will-week




그렇다면 유언장 없이 죽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이때는 주정부법 기준에 따라 자산이 분배된다.


배우자 여부, 자녀 여부, 또는 자녀가 친자인지 아닌지 등에 따라  세부내용은 달라지지만 크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분배된다 (BC 기준).


배우자 -> 자녀 -> 부모 -> 형제자매 -> 조카


하지만 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 자산을 나누길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해놔야 한다.


가족들 간에 분배 비율을 미리 조정할 수도 있고, 내 반려동물을 위해 일정 금액을 따로 정해놓을 수도 있다. 특정 자선단체에 내 자산을 기부하고 싶다면 이 또한 미리 명시해 놓아야 한다.


나아가, 장례절차 및 사후 장기기증 등 여러 가지 세부 사항에 대해 미리 고민 및 논의해 보고 내가 원하는 바를 미리 표명해 놓을 수 있다고 한다.



남편과 이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아이도 없고 가진 자산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서로의 미래를 위해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언젠가 남편 혹은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런저런 서류작성의 걱정은 최소화하고, 그저 떠나간 사람의 부재를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 떠나는 사람이 남겨질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하기에...


마침 집 근처 추모공원에서 무료로 유언장 양식을 나눠 준다고 하니, 그걸 연습삼아 한 번 작성해 봐야겠다.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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