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모르는 한국인
예전에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 4명을 만났다. 그중 기혼자는 나 포함 셋, 나머지 둘은 미혼이었다.
이런저런 대화 중, 기혼자 1이 말했다.
"어휴, 우리 남편은 아직도 내가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한다니까? 남편이 아니고 아들이야, 아들!"
그에 기혼자 2가 질세라 받아쳤다.
"야, 말도 마, 내가 전에 남편한테 못 하나 박아 달라고 했더니, <못 박는 법> 유튜브 찾아보고 앉아있더라. 결국 답답해서 내가 했잖아. 남편들은 다 그런가 봐?"
하며 자연스레 기혼자 3인 내게로 나머지 4명의 시선이 옮겨왔다.
딱히 받아칠 말이 없던 내가 우물쭈물하며 망설이자, 나를 잘 알던 기혼자 1이 "야, 아닌 남편도 있어. J는 그런 거 몰라" 하며 나 대신 답을 해줬다.
그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노코멘트할게..."
식사 후 커피를 마시러 자리를 이동하던 길이었다.
아까 남편이 못 하나 못 박는다고 했던 기혼자 2와 둘이 나란히 걷게 됐는데, 그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그 친구가 들려준 남편 얘기는 아까와는 많이 달랐다.
친구가 아이를 낳고 이래저래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에 남편분이 얼마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는지, 친구한테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있는지, 잠깐 얘기를 들어봐도 사람이 너무나 진국이었다. 친구한테 "그런 남편이 있어 정말 든든하고 좋겠다"고 하자, 친구가 "안 그래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을 했다.
다음 날, 다른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자매 같은 동생들이라 정말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전날 대학 동기들과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다같이 얘기할 때는 남편 흉만 보는 분위기였거든? 그런데 나랑 둘이 있을 때 한 얘기는 전혀 달랐어. 너무나 괜찮은 분이신 거야. 그런데 왜 그런 좋은 얘기를 진작 하지 않았을까?”
그에 친구가 대답했다.
언니, 그거 그냥 한국 문화야.
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 칭찬, 와이프 칭찬하면 팔불출 소리 듣거든.
앗, 이게 한국 문화였다고? 참고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얼마 안 하고 캐나다에 간 지라 이런 문화에 익숙치 않았다.
동생이 덧붙였다. "아마 언니 친구분도 사실은 남편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다같이 있을 때 한 얘기보다 언니랑 둘이 한 얘기가 더 진심일 거거든."
동생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나를 얼마나 재수 없게 생각했을까. 할 말 없음 그냥 조용히나 있을 걸, “나는 노코멘트할게”라니’
그런데 이게 그저 한국의 문화라는 걸 알고서도 바로 실행에 옮기기가 영 쉽지 않았다.
신기한 건, 오히려 브런치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건 이곳이 익명인듯 익명아닌 익명같은 분위기라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은 글로 소통하며 공감을 나눈 글벗님들과 어떨 땐 웬만한 친구 이상으로 가까움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남편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몇 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한테 굳이 그의 단점을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기회가 된다면 내 남편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자랑하고 싶었다.
"있쫘나, 마이 허즈번드가 얼~마나 스윗한지, 세상에 내 손에 물 한 번 안 묻힌다니까? 홍홍홍"
이런 식의 닭살 돋는 얘기가 아니라, 내 친구가 자기 남편의 다정함과 든든함을 얘기했듯이 나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내가 그 먼 캐나다 땅에서 살겠다 마음먹은 이유이며, 그와 대화하는 시간은 늘 즐겁고, 지금은 내가 가장 많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내 친구들도 자기 남편의 좋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행복을 응원해주는 그런 관계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