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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Apr 17. 2023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우울증 환자 천만의 시대


<금쪽같은 내새끼>를 즐겨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에서 아이들이 '죽고 싶다', '죽어버려' 같은 말을 하거나 '자살', '자해'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이를 순화시킨 다른 표현으로 자막이 나오는 걸 종종 목격했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욕설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포함된 건 그렇다 쳐도, 언제부터 우리가 '자살'이라는 단어도 방송에서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자살이나 자해 같은 단어는 욕설과는 차원이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자살을 생각했다는 그 아이의 마음이고, 스스로를 해하는 그 아이의 행동이며, 이를 어떻게 도와 바로잡아 줄 것인가에 대한 것이지, 그 단어 자체를 가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나는 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금쪽이는 아이들도 보는 프로니까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작년 이태원 사고 관련해서 여러 기사를 읽다가 정말 우연히 이런 포스팅을 발견했다.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캡처해 놨던 기사라 아쉽게도 출처조차 찾을 수 없지만, 이렇게 '사망'의 '사'자를 모두 모자이크 처리해 놓은 걸 보고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 1월 방영된 <유퀴즈 온 더 블럭> 나종호 정신과의사 편을 보고, 그간 가지고 있던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나종호 교수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언젠가부터 '극단적 선택'은 자살의 완곡한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이 표현은 말 자체에 '선택'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어 마치 다른 선택도 충분히 있었는데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보여, 그로 인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병으로 사망한 경우엔 '투병'했다고 표현하는데, 정신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떠난 이는 물론 유족에게 대단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또한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거나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없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출처: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기사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률은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지난 17년 동안 OECD 국가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자살사망자 수는 2021년 기준 1만 3천여 명이었으며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었다.


한국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로 OECD는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이 현저히 낮은 점을 꼽았다. 이는 한국에서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걸 여전히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내 고혈압 환자는 약 1200만 명, 당뇨병 환자는 약 500만 명이며 우울증 환자는 약 100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은 6개월에서 1년 이상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우울증은 마음 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병 아니야?"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좀 걷기라도 해"

"열심히 살아봐라, 우울할 시간이 있나"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우울증 환자를 두 번 죽이는 이런 잔인한 말들 대신, 마땅히 해줄 말이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라.

힘들다는 사람 앞에서 '누가 누가 더 힘드나' 배틀하려 들지 말고, 그냥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조용히 들어줘라.


위로와 걱정의 탈을 쓴 오지랖보다 당신의 진심 어린 눈빛과 따뜻한 손길이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사진 출처: unsplash.com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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