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노래를 듣고 운 적이 있다.
'Moon River' 나한테 이곡은 클리셰였다. TV 광고나 드라마 속에서 로맨틱한 재즈바 분위기를 연출할 때나 깔리는 시시콜콜한 음악. 여기저기서 소모되어 더 이상 아무 감흥도 못주는, 음악의 역할을 못하는 효과음(악) 같은 거였다.
작년 가을 재즈 피아노 선생님에게 세 번째 레슨을 받을 때였다. 그날은 아르페지오를 배운 날이었다.
"혹시 알아요? 옛날에 이불 중에 '아르페지오'라는 브랜드가 있었어요."
"이렇게 왼손 반주를 1번, 3번, 5번, 아니면 1번, 5번, 3번, 펼쳐주는 거예요. 이불 펴듯이"
3평짜리 방음 스튜디오 안,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은 선생님이 내쪽으로 손을 뻗어서 시범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아르페지오로 펼친 문리버였다. 연주가 네 마디를 넘어가는데 마음이 울렁거리고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이게 원래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였나?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나한테 감동한 거 같기도 했다.) 갑자기 울고 싶어 졌지만 아직은 초면이니까, 슬쩍 몸을 뒤로 빼고 맨투맨 소매로 몰래 눈가를 찍어 눌렀었다. 그날 '문 리버'에는 선생님이 그동안 피아노 앞에서 보냈을 시간도 느껴졌다. 선생님 왜 이렇게 피아노 잘 쳐요? 그러니까 선생님이겠지만.
JAZZ, 정확히는 재즈 피아노에 처음 관심이 생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 나이대 동네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엄마는, 나중에 크면 엄마한테 고마워할 거라며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줬다. 알고 보니 나중에 크면 교회 반주를 시키려는 큰 그림이었지만.
곧잘 치는 편이었다. 멜로디와 코드를 정확히 칠 줄 알면 잘 치는 거였으니까. 체르니는 30쯤에서 접고 코드 위주로 반주법을 배웠었다. 시키는 대로 잘 배운 나는 주일마다 교회 유치부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됐다. 멜로디 라인에 알파벳으로 코드만 적힌 CCM과 찬송가 악보를 보고, 아이들이 노래를 잘 따라부를 수 있도록 피아노를 쳤다. 한 번은 여름 성경학교에서 밝고 활기찬 어린이 찬송가를 메들리로 반주하는데, 신났지만 이상하게 답답했다. 2절, 3절 연주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고조될 때가 있는데, 그 기분껏 손가락이 안 따라주는 거다.
그맘때쯤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를 듣게 됐다. 누군가 재즈버전으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이었다. 그래 이거야. 난 이런 게 하고 싶었어. 악보에 적힌 대로만 말고 내 맘대로, 내 기분대로 치는 즉흥연주. 네이버와 다음에서 재즈 피아노 카페들을 즐겨찾기 해놓고, 매일 ‘회원솜씨 자랑하기’ 메뉴를 들락날락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곡들을 재즈버전으로 찾아들었다. 생일축하노래 재즈버전부터, 슈퍼마리오 재즈버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재즈버전 동방신기 라이징 선 재즈버전까지.
익숙한 곡들이 재즈버전으로 새로워지는 걸 듣고 있으면 설렜다. 같은 곡도 치는 사람의 느낌과 버릇, 뉘앙스에 따라 다 다른 곡이 됐다. 나에게 재즈버전은 '나답게 소화'한 버전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자기답게 소화된 콘텐츠를 즐기는 게 즐거웠고, 또 만들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도C 레D 미E 파F 솔G 라A 시B, 다시 도C.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코드부터 다시 연습하고 있다. 코드는 초등학생 때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 피아노학원에서 얼렁뚱땅 지나쳤던 부분들이 정직하게 구멍으로 남아, 건반을 누를 때마다 손가락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읽고, 쓰고, 다시 쓰고, 타인의 문장을 모으고, 따라해보기도 하면서 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 지루하고 바보같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자기만의 장르를 빚어낼 수 있다.
재즈버전을 들을 때마다 상상한다. 언젠가 길에서 갑자기 피아노를 만나면, 나도 isn’t she lovely를 끝내주게 연주해야지. 내 스타일로.
뻔뻔한 질문 #3. 나다움
나만의 버전을 남기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나다운 건 뭘까요? 내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해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