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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Jan 09. 2022

나는 요거트가 아니에요

나이 없는 세상

어제 저녁에 마트에서 아침 대신 먹을 요거트를 고르고 있었어요.

패키지의 모난 부분을 체크하는 척하면서 유통기한이 가장 먼 요거트가 나올 때까지 뒤를 뒤지고 있었거든요. 공장에서 갓 태어난 가장 젊은 요거트요.

사실 하루 이틀 차이예요. 어차피 내일 아침에 먹어버릴 거거든요.

근데 기분이 그렇잖아요. 기필코 가장 젊은 요거트를 먹고야 말겠다.


손의 온도가 2도쯤 내려갔을까요? 마트 직원이 냉장고 깊숙한 곳에 숨겨둔 젊은 요거트를 솎아 내느라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 아 나도 요거트인가? ’


하루라도 젊어야 선택되는 거야.

학교든 직장이든 인간관계든, 어쩌면 내가 내 마음을 선택하는 것까지.

나의 필요와 쓸모는 선택당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걸까요.

나에게 유통기한을 찍어준 건 누구일까요.



7년 전부터 나이를 세지 않습니다. 처음 통성명할 때는 점잖은 척 나이를 일러주지만

사실 저에게 나이는 신체검사 결과를 확인할 때 생물학적으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표시 정도예요.

혈액형 란에 적힌 RH+A 를 쳐다보는 느낌 정도일까요.


그 대신 다른 단위로 나를 세고 있습니다.

그 해에 나를 지나쳐간 이벤트들을 셉니다.

나에게 인상을 남긴 사람들을 셉니다.

나는 1년 365일 숫자로 설명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작년의 나는 스쿼트를 60개 할 줄 아는 사람이 됐고요.

설거지는 음식을 먹고 5분 이내에 해치우는 사람이 됐습니다.

주간지를 구독하기 시작했고요. 

직장에서는 나에게 의견을 묻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와인 라벨도 읽을 줄 알게 됐다고요.

사람은 나이가 아니라 밀도로 가늠해야 합니다.

당신과 내가 같은 해에 태어났을지라도 우리는 동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우리는 요거트가 아니니까요.


뻔뻔한 질문 #4. 나이 없는 세상
나는 몇살인가요? 
하나의 나이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몇 살로 정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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