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그럴 수도있지
선생님.
제가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하시겠죠.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하면 고개를 끄덕끄덕끄덕 노트북으로는 타닥타닥 타다닥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끄덕거리니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딴생각을 시작한 신호입니다.
선생님은 제 인생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게 해 주시니까요.
선생님.
변해야 주인공이라고 하셨죠.
희생을 절대 안 할 거 같은 놈을 희생 이야기의 주인공 삼아야 한다고.
그러네요. 처음부터 주인공 같은 인물은 없네요.
많은 테스트를 지나 클라이막스에 결국,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이 있네요.
제 인생에 선택의 순간들도 생각해봤어요.
어떤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나, 선택의 전과 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나, 아니면 변하지 않는 선택만 해왔나.
아 그래도 다행히(?) 내 인생에 클라이막스는 한 번이 아니겠구나.
장르도 몇 부작 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선생님.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슴 아파하는 얘기가 있다고 하셨죠.
겪어온 상황과 느껴본 감정의 폭이 다 다르니까.
어쩌면 누군가 프로 불편러, 발작 버튼이라고 매도해버리는 그 포인트는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인지도 몰라요.
국민청원마다 공감수가 다른 것도, 가슴 아픈 기사에 달리는 어이없는 댓글도,
공감능력을 기를 기회가 다 달랐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 같아요.
그래서 법 만드는 사람들 필수교육 이수했으면 좋겠어요. 시장 어묵 먹기, 고시원 1일 체험, 이딴 거 말고
VR 같은 걸로 못 겪어 본 상황 겪어보게 해주는 거예요. 사회 각 계층 인생체험판 같은 거죠.
지방에서 취업 준비하기, 신혼부부 전셋집 구하기, 추석에 휠체어로 고향집 내려가기, 보호 종료 아동으로 살아보기 등등
아, 좀 비윤리적인가요? 왜요? 누군가 한테는 체험판이 아니라 삶의 현장인데요? 그래서 드라마가, 문학이, 콘텐츠가 필요한 거겠죠.
선생님.
작가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저는 세상에 '보통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상한 건 사실 이상한 게 아닐걸요? 못 보던 거라 어색한 거지. 솔직히 그냥 니가 몰랐던 거잖아.
여기까지, 아니 저기까지 다 보통으로 치면, 살기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못 보던 사람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고 알려주기.
그래서 '보통'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제가 살기 편해지려고요.
아니 애초에 보통이 뭐예요? 합의한 적이 있긴 했나요? 그랬다면 저는 빼고 한 거 같은데.
선생님.
선생님은 드라마 작법을 가르치시지만, 저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거 같아요.
학생들은 드라마 작가가 되려고 강의실에 앉아있지만, 저는 제가 되려고 앉아있는 거 같아요.
나는 무엇에 심각해지는 사람인지, 어디에 무너지는 사람인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저라는 사람의 경계를 밟아보고 있습니다. 쟤 왜 저래? 궁금했던 쟤는 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수업도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뻔뻔한 질문 #20. 주인공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어디였나요? 왜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나요?
다음 클라이막스는 무엇으로 어디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