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빙은 절대 안 봐.
외국 영화는 무조건 연기하는 배우의 원어에 자막 조합으로만. 성우를 꿈꾸는 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 관람은 늘 사대주의였다. 어차피 더빙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겨울왕국1>을 동생이랑 같이 봤었다. 같이 살지만 안 친한 자매 이야기.
"두유 워너 빌 더 스노우 맨?"
동생 안나는 언니 엘사를 매일 찾아가 놀자고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문전박대당한다.
"오케이 바이..." 상처받고 돌아서는 조그만 어깨를 보는데 가여워서 눈물.
'좀 놀아주지 그치?' 하는 맘으로 옆자리에 앉은 동생을 봤는데 시큰둥. 아 여기서 우는 게 아니었구만!
우리 집 자매는 동생이 시크한 엘사고, 내가 치대는 안나 역할이다.
5년 뒤, 겨울왕국2도 동생이랑 같이 보게 됐다. 많이 컸겠구나 얘들도. 떨어져 살지만 마음은 더 가까워진 자매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아 더빙은 아쉬운데. 당일에 갑자기 예매하려니 남은 회차는 한국어 더빙 판 뿐이었다. 그래도 엔딩 크래딧이 오를 때 디즈니가 선택한 한국 가수가 렛잇고 후속곡을 불러준다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저녁 7시 영환데 애들은 낮에 보고 다 자러 갔겠지. 일단 예매하고 나니 봐야 할 이유는 알아서 따라왔다.
극장은 유키즈 존이었다.
엄마 손 잡고 온 꼬맹이부터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기까지. 관객 크리를 당하진 않을까 약간 초조해졌다. 에이, 어차피 천만 관객 넘었대서 보는 거지 엄청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었어. 재밌으면 한 번 더 보면 되지. 난 영화표를 살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니까. 상영관 불이 꺼지고 디즈니 성 위로 폭죽이 터졌다.
영화가 아닌 것 같았다.
아이 성우들의 목소리를 빌려 장난감 놀이를 하는 안나와 엘사를 보니, 일곱 살 때 일요일 아침에 보던 어린이 만화동산을 틀어 놓은 거 같았다. 목소리와 살짝씩 어긋나는 입모양을 집중해서 쳐다보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는 TV를 코앞에서 봐서 TV에 들어가겠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 만화동산은 본 게 아니었다. 만화동산에 들어간 거였지. 이상해. 울라프가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참 솔직한 관객들이었다.
울라프가 빙판 위에 우당탕탕 넘어지면 꺄르르-
엘사가 파도로 말을 만들어 타고 달릴 땐 와아아-
신나게 웃고 마음껏 감탄했다.
녹아서 사라진 줄 알았던 울라프가 살아 돌아왔을 때는
앞줄에 앉아있던 아기가 감격하며 외쳤다. “울라프!”
나도 몰래 소리 내서 환호했다. 용감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도슨트였다. 겨울왕국 가이드였다.
겨울왕국을 본 사람은 천만이 넘겠지만,
겨울왕국에 다녀온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더빙판을 본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는 엔딩 크래딧이 끝나고 제일 마지막에 일어났다.
<겨울왕국3> 개봉하면 더빙으로 보자. 오 나도 그 생각했는데. 우리는 역시 잘 통하는 자매였다.
얘들아 미안해, 고마워.
다음에도 겨울왕국 같이 가!
뻔뻔한 질문 #13. 시시함
어릴 때 즐겨봤던 만화영화가 있나요?
어떤 점이 좋았나요? 지금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