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사우나
퇴근길 택시 뒷좌석에서 기사님 몰래 찔찔 울다가 든 생각.
노래방처럼 울음방 같은 건 없을까?
눈물 닦고 스마트폰으로 검색 시작.
일본 도쿄에 'crying room'이 있다고 한다.
그래 화장실처럼, 눈물이 급할 때 당연하게 찾는 그런 곳 하나쯤 있을 줄 알았어.
< 울음방 옵션 >
- 포근하고 따뜻한 담요
- 눈가를 부드럽게 닦을 수 있는 캐시미어 급 티슈
-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DVD
- 울고 나서 부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스팀 아이마스크
풀옵션이었다. 흐르던 눈물도 쏙 들어갈 정도로.
울고 싶은 상황은 (울컥) 갑자기 만난다. (왈칵) 아 진짜 참고 싶었는데.
평소에 광대 안에 눈물 게이지를 가득 채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울음방은 그냥 평범한 숙소일 거다.
어른들은 어디서 울까? 울어도 될까?
애들은 어디서나 잘 운다, 울어도 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주고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닦아주기도 하니까.
살다 보면 눈물샘의 수위가 변한다.
눈시울이 뜨거웠던 일은 시시해지고 눈물 나는 상황은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도 쌓인다.
살아보니 눈물샘 수위를 조절당한 거 같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우는 건 체면이 상하는 일, 약점을 들키는 일이라는 룰을 은연중에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울어본 얼굴들을 만날 때가 있다. 마른 얼굴에 눈물길이 나있는 사람들, 평온하게 웃고 있지만 눈물에 잠겨본 얼굴들.(울어서 평온 해진 건가) 저 사람들은 어디서 울어왔을까.
언젠가 목놓아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서 깊은 소화불량을 느낀 적이 있다. 우는 법을 까먹은 거 같았다.
그러다 엉뚱한 상황에서 모난 모습으로 삐쭉 터져버리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눈물이 아니라 눈물결석이 되어버린 느낌. 작은 일에도 감동받고 자주 감탄하던 마음도 시큰둥해졌다. 지루했다. 감정표현도 어려워졌다. 제때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와 고장나버린 감정의 신진대사.
우는 건 어쩌면 마음근육을 쓰는 일 아닐까.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인 거니까. 에너지를 쓴 거니까. 우는 걸 흉볼 게 아니라, 상처난 근육은 회복시키고 무뎌진 마음은 말랑하게 풀어주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그동안 '감정적'이라는 말로 마땅히 울어야 할 사람들의 눈물을 빼앗아 온 거 같다. 사람이 좀 울 수도 있지, 그러니까 사람이지. 인간다움을 말할 땐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릴 잘도 하면서.
사람은 울면서 크니까. 몸은 다 자랐대도 마음과 정신은 죽을 때까지 성장기니까. 띄엄띄엄 기록해보자. 언제, 어디서, 왜 울었는지, 왜 울고 싶었는지, 울컥 포인트들을. 그러니까 우리는 눈물샘을 건강하게 회복할 곳이 필요하다.
감동적인 공연이 끝나고 저절로 쏟아지는 기립박수처럼
한바탕 조깅하고 시원하게 흘린 땀처럼
우레와 같이 울고 개운하게 닦아버리는 곳.
축 개업. 눈물사우나.
뻔뻔한 질문 #14. 눈물
눈물을 참아본 적 있나요? 왜 참았나요?
눈물 날 때 찾는 곳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