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드림 hd books Apr 20. 2019

치와와 전설, 영원한 반려동물 가족이 되다

‘쇼핑백 안에는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치와와가 있었다’     


직장 동료 모친이 팔순을 맞아 조촐한 잔치가 있었다. 행사 도중에 눈인사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직장 동료가 쫓아 나왔다. 집에서 기르는 치와와가 얼마 전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를 줄 터이니 데려다 키우라는 것이다. 생각하지도 않은 갑작스런 제안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동료는 쇼핑백 하나를 들고 와서 그것을 품에 안겼다.      

쇼핑백 안에는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지닌 누런색 단모의 치와와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이를 어쩌나. 받기도 그렇다고 안 받기도 난처해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아이 정서 발달에 좋으니 데려다 잘 키워주세요.” 하고는 화답할 겨를도 없이 동료는 자취를 감추었다. 남의 잔칫집에 갔다가 엉뚱한 혹 하나를 붙인 격이다.    

  

처음 며칠간은 제 어미를 찾느라 끙끙대더니 우리 가족과의 동거 사실을 알아챘는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갔다. 체구에 비해 머리가 크고 돌출된 눈이 우스꽝스럽지만 영리했다. 내 무르팍이 제 딴에는 안락했는지 틈만 나면 무르팍 위로 펄쩍 뛰어올 라와 살그머니 엎드려 눈을 감곤 하였다. 어찌나 까불어 대는지 이름을 까불이라 지으려는데 아내가 촌스럽다며 뽀삐라 불렀다. 내 생각엔 뽀삐가 별로였지만 모두들 좋다는 데 별 수 있나.      


주말이면 뽀삐와 작은 계곡이 흐르는 인근 산으로 올라갔다. 나를 놓칠세라 작은 체구임에도 팔딱팔딱 잘도 쫓아왔다. 간혹 품에 안아줄 때도 있었지만 운동을 시킨답시고 쫓아오도록 하면 힘이 드는지 혀를 턱밑까지 빼고는 할딱거리기도 했다. 계곡 물가로 녀석을 데려다 물에 담그고는 목욕을 시켰다. 털이 짧아 목욕시키는 일은 수월했으며 젖은 털을 말리는 건 뽀삐 스스로 몸을 털어 자연 건조시켰다. 그해 가을 무렵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말 녀석의 목욕 순례는 그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겨울이 왔다. 녀석은 늘 거실에서 지냈다. 그런데 겨울이 오자 유독 몸을 떨었다. 치와와는 본디 멕시코가 원산지라 추위에 치명적이란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뽀삐에게 안방을 내주었다. 형식상 동거가 사실상 동거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한 번 들어버린 버릇은 고치기 힘들다는 거였다. 

봄이 왔다. 안방을 점거한 뽀삐를 다시 거실로 내보내면 심하게 짖어대고 끙끙 앓았다. 

‘이런 젠장. 네 맘대로 하렴.’ 

체념하고 말았다. 


이후 색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영리해서인지 반려동물의 특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멋대로 가족의 서열을 만들어버렸다. 서열 제일 꼭대기에 나를 앉히고 녀석의 서열은 두 번째, 아내가 세 번째, 큰아이가 네 번째, 작은아이는 다섯 번째 이런 식이었다. 기가 막혀 뽀삐가 만들어놓은 서열을 무시하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뭘 믿고 기고만장하는 건지 버럭 화를 내다가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몇 해 뒤, 단독주책에서 살던 우리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엔 개를 키울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해 있었다. 이사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그 사실을 인식시켰다. 우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달리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단골 가게인 슈퍼마켓 주인에게 전후사정 이야기를 하고 뽀삐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슈퍼 주인은 달리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내 청을 들어주었다. 이사하는 날 뽀삐를 품에 안고 슈퍼로 가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났다. 녀석은 그런 줄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며 내 얼굴을 진하게 핥았다. 처음 내게 왔을 때처럼 슈퍼 주인에게 뽀삐를 안기고 얼른 자리를 떴다. 가슴이 저려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며칠이 지났다. 늘 곁에서 여우 짓을 하던 녀석이 눈에 밟혀 견딜 수가 없었다. ‘참아야지 잊어 야지.’ 다짐 또 다짐을 해봤지만 그놈의 정이 뭔지 그럴수록 뽀삐가 가슴을 후벼 팠다. 거주하는 아파트는 2층이었는데 잠자리에 들면 밖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날도 그랬다. 가까운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렇잖아도 뽀삐 때문에 심란한데 어떤 녀석이 저렇게 처절하게 짖는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와 보니 녀석이 더 세차게 짖어댄다. 뽀삐였다. 슈퍼 주인이 목에 매어놓은 목줄을 끊고 도망쳐 내 집을 무슨 수로 찾아낸 건지 울컥 눈물이 솟았다. 

아파트에서 키울 길이 없는데 이렇게 찾아오면 어쩌란 말이냐. 

기쁨 반, 원망 반이 교차하였다.      

 한동안 녀석을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다가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작정하였다. 녀석을 안고 슈퍼마켓으로 찾아갔다. 뽀삐를 마지막으로 본 게 그때였다. 날마다 뽀삐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지워낼 수 없었다. 비록 뽀삐와 생이별을 하였지만, 내가 지금까지 반려동물 가족이 된 것은 뽀삐에게 받은 사랑 때문이었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하였을 때는 두 녀석의 몰티즈와 살았다. 이웃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는 민망함을 감수하면서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동고동락할 수 있었다. 

뽀삐야! 그때의 아픈 일들을 이젠 용서해 주렴.(김영태) 

          


청각도우미견 소라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56343066&orderClick=LAG&Kc=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56340751&orderClick=LAG&Kc=     

작가의 이전글 이재명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등재 추진 성공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