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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Apr 20. 2019

‘명동교자’를 국민음식점이라고 부르는 이유

우리나라 맛집 가운데 

가장 많은 블로거의 포스팅을 가진, 

가장 자주 맛집 글을 올리는 곳이 명동교자이다.   

   

작년부터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곳이 생겼다. 어느덧 나는 그곳 단골이 되어 있었다. 사무실과 가까운 곳이어서 야근을 하거나 혼자 일하곤 하는 주말 저녁이면,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혼자 저녁 겸, 술 한 잔을 곁들이곤 한다. 그 집에서는 장작을 지펴 닭을 구어 낸다. 장작의 잉걸불로 닭을 구우니 기름이 모두 빠져 닭 껍질조차 버릴 게 없다. 기름이 물씬물씬한 다른 육류는 사실 먹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고지혈증 등 한두 개 정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성인병은, 육류를 즐기게 된 식생활의 개악(改惡)에서 비롯된 바 크기 때문이다.   

담백한 맛의 대명사처럼 구어 나온 장작 숯불 닭에는, 열무김치가 따라 나와서 식사와 안주를 겸하기 제격이다. 갓 절여 아삭아삭 싱싱한 열무김치가 시골 출신 내 식성의 오감을 더욱 즐겁게 한다. 담백한 육질과 상큼한 열무 즙이 마치 밥과 국처럼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소주는 한 병이어도 열무김치는 두 접시를 먹는다. 물론 열무 한 접시 양은 고만하다.


어제도 열무김치를 한 접시 더 부탁하였다. 

하지만 금세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두 번째 나온 열무는 순이 시래기처럼 죽어 얼음기가 느껴졌다. 취기로 달떴던 감성에도 성에가 끼고 말았다. 손님인 나를 쉰 김치 정도로 보았을까. 아니면 그리 대해도 올 사람은 올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오늘 담근 열무김치가 부족하다거나 다 떨어졌다며 사전 양해를 구하였다면, 그곳 이미지가 나의 뇌리에서 3류 정도로 취급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며칠은 있었음직한 그 열무김치도 아무 소리 없이 다 먹었다. 닭도 뼈조차 빨아먹듯 깨끗이 해치운 뒤 밖으로 나왔다. 적어도 음식에서는 태클이 없는 식성 탓이긴 하지만, 남이 먹다 남긴 쉰밥을 얻어먹고 나온 기분이었다. 장작 구이 맛은 있으나 그곳 경영자의 손님을 대하는 프로 정신은 없어 보였다.     

출처: 명동교자 홈페이지

모르긴 해도 네이버와 다음 포털사이트 블로거들이 가장 자주 포스팅 하는 맛집은 ‘명동교자’이지 싶다. 대부분 맛집처럼 블로거들과 접촉하여 홍보 목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다. 명동교자에 다녀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게시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다녀오면 포스팅 하고픈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명동교자는 창업 당시부터 ‘명동칼국수’라는 상호를 썼다가 훗날 ‘명동교자’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눈에 띠는 ‘명동칼국수’의 발원지가 명동교자이다.  

    

3년 전 가을 50주년 행사를 가졌을 만큼, 명동교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동의 상징적인 존재 가운데 하나이다. 명동교자를 ‘국민음식점’이라고 표현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는, ‘분식’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50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고정 손님층이 두터울 것이다. 생각할수록 경이로운 일이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식당 홀이 혼잡해도 손님을 허투루 대하는 일은 없다. 이런 명동교자의 명성은, 오랜 세월 숙성된 장인정신과 같은 철학이 밑절미가 되었다.      

출처: 명동교자 홈페이지

명동교자의 우듬지는 칼국수요, 맛이다. 칼국수에는 오직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마늘김치가 나온다. 여느 ‘명동칼국수’에서 그 김치를 흉내 내긴 해도, ‘흉내’에서 그칠 뿐이다. 명동교자의 칼국수와 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치 연리지 같은 존재이다. 

하루 찾아오는 손님이 수백 명일 터인데, 김치는 매일 담그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손님이 김치를 더 달라고 하여도 지나간 김치를 꺼내주지는 않는다. 열무김치를 싱싱한 맛으로 먹듯, 명동교자 김치도 그 고유한 맛을 있는 그대로 제공하기 위해 철저하게 선을 지켜왔다. 그러한 정신이 오랜 세월 사랑을 받게 된 원천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명동교자 창업주인 P회장님의 정신이기도 하다.    

 

분명한 선(철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와 명예 인기, 권력 등이 최정상인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를, 언론 기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요즘이다. 대부분 인생철학 부재에서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을 적어도 이렇게는 살아내야지’, ‘이것이 우리 사업장 정신이지.’ 하는 정도는 지키며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쐬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쐬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가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니 시내를 이루고 바다로 가나니)

-용비어천가 제2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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