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을은 순천시와 벌교읍 중간 즈음 위치한 별량면 덕산이라는 곳이다. 행정구역상은 순천시이지만 거리상으로는 벌교가 조금 더 가깝다. 승용차로 10분 남짓 거리이다.
고향 마을에서 가자면 벌교 초입인 곳에는 1천만 부가 넘게 판매가 된 태백산맥을 기리는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어느 문학관과는 달리 터가 넓거나 건물이 큰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다.
고향에 가면 자주 태백산맥문학관을 찾는다. 문학관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은 바로 탑처럼 쌓인 태백산맥 육필 원고이다. 물론 태백산맥을 원고에 옮기기 전 적바림한 노트들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나는 문학관을 둘러보며 그곳의 문학적 기운을 받고는 싶지만, 언감생심 선생처럼 대 작가의 꿈을 꾸지는 못한다. 대신 우리 해드림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낼 작가와 인연이 되는 날이 있을까 하는 꿈은 서린다. 우리처럼 작은 출판사가 자체 힘으로 베스트셀러를 키워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작가가 우리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킬 저자를 우리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소설 태백산맥의 자취소리를 들을 때면 그런 흥분이 일곤 한다.
고향 인근에는 유명한 사찰 두 개가 있는데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선암사가 그것이다. 물론 구례화엄사도 가깝다. ‘송광사 가서 계율 자랑하지 말고 선암사 가면 문장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선생의 아버지 조종현 스님은 시조시인이었다. 일본 유학 후 그 ‘문장을 자랑하지 마라’는 선암사에서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일로도 유명하다.
조종현 스님은 일제강점기 때 스님들의 비밀결사조직 ‘만당’(卍黨)에 들어가 만해 스님과 함께 항일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최대 교세를 자랑한 불교를 장악해야만 식민통치가 용이해진다는 판단 아래 종교 황국화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방법의 하나로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선암사 아랫마을 에서 선생이 태어났다. 아무래도 선암사의 기운을 받아 선생이 대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의 신간 소설 ‘천년의 질문’ 전3권이 해냄출판사에서 곧 출간될 모양이다. 소설 ‘천년의 질문’은 사회 각계각층에 대한 치밀한 취재를 통해 정치인, 기업가, 학자, 기자 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현재상을 그렸단다. 부, 권력, 명예를 위해 가족마저 등지는 비정한 시대에서 양심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선생은 고민하였다고 한다.
역시 ‘해냄’이라는 대형 출판사답게 사전 기획이 돋보인다. 얼마 전 대형 포털 네이버의 오디오클립을 통해 유명 성우들의 목소리로 소설 내용을 소개하였다. 사전 홍보 효과는 충분히 달성되었을 것이다. 허긴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사전 홍보가 필요할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