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3돌 한글날이 다가왔다. 국경일인 한글날 처음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한글날이 다가오면 언제나 ‘KBS1 우리말 겨루기’가 떠오른다. 2003년 6.25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수많은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단연 으뜸이다. 우리 국민에게 ‘한글’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더욱 고조시키고, 일반 국민의 국어 실력을 향상시킨, 어떠한 공로상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절대 사라져서는 아니 될 귀한 프로그램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품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시어 같은 낱말이 수두룩하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우리 낱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음에도 숨을 얻지 못하여 죽은 듯 묻혀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국어사전은 꽃밭이다. 이름 없는 꽃은 없다지만,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시들어 있는 꽃이 널브러졌다. 국어사전에서 예쁜 낱말을 찾는 일은 풀숲을 뒤져 숨어 있는 예쁜 꽃을 찾는 일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국어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 아름다운 꽃을 찾아 자신의 꽃밭으로 옮겨 심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춘수 시인의 ‘꽃’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시인이 노래한 ‘꽃’은 바로 ‘아름다운 우리 낱말’과 비유된다. 한글은 우리 호흡과 같다. 우리 국민에게는 죽은 듯 묻혀 있는 낱말의 이름을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게’ 불러, 그 낱말이 우리에게 와서 또 다른 꽃이 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중한 우리말을 파괴하여 사용한다. 트위터 등 SNS에 올라온 젊은이들의 글은 누군가 해석해주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표현이 거친데다 도무지 기성세대들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말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서가 삭막해진 탓인지 인신 공격적인 막말도 난무하다. 심지어 정치 지도자들도 서슴없이 막말을 뱉어낸다. 어제도 국회 법사위원장의 동료의원에게 내뱉는 욕설이 전파를 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의 입에서 그런 욕설이 튀어 나오는 것을 보며 기겁을 하였다.
한글날을 앞둔 오늘 ‘국어사전이라는 꽃밭에서 예쁜 꽃을 찾아 내 꽃밭에 옮겨 심어보는 취미’를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쁜 낱말을 모으는 일만 해도 마음이 예뻐질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자신의 말과 글에 자주 사용한다면 인품과 인성이 향기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이는 거친 정서를 순화하고 메마른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예쁜 낱말을 찾아 문장을 지어보는 일은 아래와 같은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뇌세포와 감성을 애써 움직여야 한다. 요즘 무언가 자꾸 까먹는 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문장을 짓다 보면 문장에 맞는 지난 상황이나 현재 주변 상황을 기억해 내려 애쓴다.
.흡족한 문장이 지어졌을 때의 만족감은 마치 아름다운 시 한편을 지은 듯 행복하고 일상의 번뇌를 치유한다.
.문장을 잘 다루는 훈련은 좋은 글을 창작하는 데 기본이 된다.
.짧은 한 문장을 쓰는 것이니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즐긴다.
.한 번 썼던 문장도 좀 더 나은 문장으로 계속 고쳐가며 ‘수련’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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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하단기 문학나눔(우수도서) 선정도서
[반거충이의 말밭산책]
우리말이 세계적으로 우수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낱말 하나에 시대적 배경이 담겼고, 삶의 흔적과 인생철학이 담긴 게 우리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우리 이름이 있다. 심지어 성장 단계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들도 수두룩하다.
예컨대 ‘명태’에 붙은 이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다.
명태의 새끼를 노가리 혹은 앵치라고 한다. 이처럼 성어와 새끼의 이름이 다른 몇 가지 예이다. 숭어 새끼를 모쟁이, 가오리 새끼를 간자미, 농어 새끼를 껄떼기, 갈치 새끼를 풀치, 방어 새끼를 마래미, 고등어 새끼를 고도리, 전어 새끼를 전어사리라고 부른다.
명태를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바람이 많이 불어와서 육질이 흐물흐물해진 찐태, 기온이 높은 날이 오래 지속되어 검게 변한 먹태, 기온이 높아 충분히 얼부풀기가 반복되지 않고 곧바로 건조되어 딱딱한 깡태 등등
이런 걸 보면 우리 민족은 가히 언어학자나 다름없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평소 우리말 지식에 대한 부족함을 느껴왔다. 그때마다 뜨끔하여 심적 갈등을 겪은 것이다. 이따금 우리 말 의미의 친교가 절절하여 말밭을 들쑤셨다. 그 길에서 수필처럼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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