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드림 hd books Dec 09. 2019

조용한 휴식이 필요할 때 떠오르는 그곳 펜션

쉬고 싶었다. 

지난 11월은 한의원과 종합병원을 다니며 수심을 쌓아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헛돈 지출도 세 번이나 생겨 겨울처럼 나를 가라앉혔다. 질질 끌다시피 다니던 다리 통증은 12월이 되고서야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이틀 전부터 감기를 앓는 중이다. 주말에는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내게는 두 곳 있다. 한 곳은 어머니가 있는 시골집, 다른 한 곳은 남양주 수동면 해드림펜션이다.

해드림펜션에는 함께 가고 싶은 분이 있었다. 원로 시조시인 이상범 선생님이다. 녹차 전문시집 <녹차를 들며> 출간 후 한 일주일 몸살감기를 앓았는데 지금은 거의 회복중이라 하여 전화를 드렸더니 토요일 오후 사무실로 나오셨다. 더구나 사모님의 병증이 짙어, 이래저래 휴식이 필요한 당신이었다.

올해 85세인 이상범 시인의 호는 녹원이다.     


사무실에서 목이 잠긴 나를 살피던 선생님은, 당신이 처방 받아 먹던 감기약을 당장 먹으라며 건넸다. 커피를 마셔도 기침이 터졌다. 이번에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시럽을 꺼내 얼른 마시란다. 이전보다 야위어 뵈는 당신이 더 안쓰러운데 한사코 당신 약봉지를 꺼내 먹이는 것이다.     

해드림펜션을 향하는 선생님과 나는 풀기가 없었다.

두어 해 전에는 겨울산을 뒤덮은, 금세 바스러질 듯한 갈빛만 봐도 몸을 떨어가며 삭막해 하였다.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우울한 계절이다. 

마석에는 눈과 햇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음지마다 깔린 눈을 햇빛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오늘 저녁 눈이라도 소리 내어 내리면 이를 데 없이 행복한 숲속이 되겠지만, 내일 펜션에서 나오려면 애를 먹을 것이다. 눈은 아니더라도 귀성곡처럼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라도 들었으면 싶다.


전철로 용산역에서 상봉역까지 30분, 환승하여 마석역까지 30분, 마석에서 택시로 20분 걸려 해드림펜션으로 들어섰다. 마석역 앞에서 버스를 타면 신망애 사거리(수자원 앞)에서 내려 20분쯤 걸으면 된다.

애초 나는 펜션에서 볼거리를 즐기려 머무는 게 아니라, 사로잡혀 사는 도시의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와 여유를 누리기 위해 머문다. 펜션의 겨울 풍경이 다소 삭막하더라도 고요한 숲속이니 더 바랄 게 없다. 나는 어디를 가든, 또 아무리 누추해도 그곳에서 하룻밤 묵기를 좋아한다. 전혀 낯선 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언제나 설레게 한다. 여행지에서 꼭 자고 와야 여행하는 맛이 나는 것이다.         

김희창 대표님이 일찍 저녁을 차려주었다. 저녁이라기보다 안주상이었다. 삼겹살을 굽고, 부추를 듬뿍 넣어 토종닭을 삶고, 김장김치며 적당히 익은 총각무 김치를 곁들어 비워지는 소주잔을 채웠다.

녹원 선생님은 김희창 대표에게 주려고 디카시집 몇 권을 준비해 왔다. 술잔을 들던 중간 중간 녹원 선생님이 시집을 꺼내 사인을 해주었다. 술자리는 순전히 김희창 대표님을 위한 자리였다. 최근 출간된 <녹차를 들며>에는 일반적인 사인을, 작년에 출간된 <푸득이면 날개가 되는>에는 김 대표의 얼굴 캐리커처로 사인을 대신하였다. 이 캐리커처는 12월에 출간될 김희창 대표의 자전 에세이 ‘무궁화 꽃이 피면’ 프로필 사진으로 대체하려 한다. 재작년에 출간된 <쇠기러기 설악을 날다>에는 붓필로 난을 쳐 사인을 하였다. 선생님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디카 사진에도 사인을 남겼다. 내용이 무엇이든 예의 그 정성을 한 자 한 자 새겼다. 

청람(淸覽)이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문인들이 자신의 책에 사인하면서 상대방 이름 끝에 붙이는 낱말인데, ‘남이 자신의 글이나 그림 따위를 보아 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굳이 ‘청람’을 붙이지 않아도 정성스러운 사인이 담김 책을 어찌 냄비받침으로 쓰거나 짐이 된다며 버릴 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백미는 김희창 대표가 쓴 짤막한 글을 선생님이 필사하고 낙관을 찍어준 것이었다.     


깊은 숲속 외딴 집

솔잎 스치는 바람소리

영혼을 씻는 고요가 숨 쉬는 곳     

실계곡 흐르는 마당가

가지 앙상한 늦가을 백일홍

상처 받은 꽃잎조차 손을 흔들어

너와 함께 걸으며 머물고 싶은 곳

-수필가 김희창    

 

해드림펜션을 노래한 김희창 대표의 글이다. 본래 원문에는 ‘고요가 있는 곳’이었지만 ‘고요가 숨 쉬는 곳’으로 하면 좋겠다는 녹원 선생님의 조언을 따랐다. 역시 60년 시력(詩歷)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은유의 대가다웠다.

사실 해드림펜션의 ‘해드림’은 해드림출판사의 ‘해드림’을 딴 것이고, 이 해드림이라는 이름은 녹원 선생님이 내가 출판사를 창업하던 때 지어준 것이다. 김희창 대표가 펜션을 지으면서 해드림출판사 이름과 같이 하고 싶다 하여 해드림펜션이 되었다.     


잠시 밖으로 나왔다. 숲속 어둠에는 향기가 있을 듯하여 심호흡을 하였다. 바람이 싸하게 불었지만 나목의 숲속 침묵은 깊었다. 작은 바람에도 나무가 흔들리는 줄 알았다. 흔들렸던 것은 나무가 아니라 이파리였음을 나목을 보며 깨닫는다.     


녹원 선생님과 김희창 대표가 깨기 전, 아침 산책을 나섰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짧은 산책로를 아주 길게 걷다 돌아왔다.

펜션 마당가 도랑 물소리가 지난밤 소주로 탁해진 영을 씻긴다.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물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도랑을 따라 내려오며 작은 부딪침이 일 때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흘렀다. 도랑물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내며 겨울 아침 찬기를 맑혔다.


거실로 들어오자 선생님이 차를 우려 놓았다. 무슨 차냐 여쭈니 달빛차란다. 달빛차는 우전(雨前)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우전은 절기 곡우(穀雨: 곡식이 자라는 데 좋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날)를 전후하여 딴 찻잎으로 만든 차로 최고급 차이다.

차를 즐기는 선생님에게는 다기가 필요 없었다. 집을 떠나오며 겨울 아침 숲속에서 마실 찻잎을 싸오신 모양이었다. 물을 끓여 컵에 따르고, 물이 조금 식었을 때 찻잎을 넣으니 달빛차가 색깔을 드러냈다. 거실에서 선생님과 숲속 겨울 아침을 달빛차의 색향미로 풀어 마셨다.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었다. 추운 겨울 아침 뜨거운 김치찌개를 후후 불어가며 먹다 보니 콧등에서 땀이 송골송골 솟는다.

대부분 펜션은 투숙객이 먹거리를 해결한다. 혼자 오더라도 고기와 김치 한줌만 싸오면 김치찌개를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겠다.  

해드림펜션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소나무에 소복하게 눈이 쌓이면 꼭 전화해달라고 하면서 해드림펜션을 나섰다.

해드림펜션을 나서는 선생님과 나는 풀기가 넘치고 있었다.          


[남양주 수동편 해드림펜션 홈페이지]

http://ezp2.kr/h/f4203/home.php?go=main     


작가의 이전글 스토리텔링 18개 질문, 스토리텔링 어떻게 써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