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디귀한 젊은 날 10년을 사법시험 준비로 허비하고 말았다. 능력도 안 되면서 신분상승을 꽤한 탓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 이 나이(?)임에도 합격할 자신이 있다. 나는 공부의 기술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데다 군 복무 33개월이란 공백이 당시 학력고사를 치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이런 환경이 사법시험 공부에도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결국 실패로 귀결된 사법시험 준비 기간을 돌이켜보면 공부, 특히 사법시험 합격에는 몇 가지 꼭 지켜야 하는 기술이 있는데, 나는 그저 마음만 급해 우직스럽게 시간 확보에만 매달렸다.
넉넉지 못한 살림의 형이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었었다. 너무나 아프게도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데, 나는 늘 그에게 죄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군에서 아직 근무 중인 꿈을 꾸듯, 지금도 종종 사법시헙 준비 중인 악몽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는 언제나 조바심과 부담감으로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다.
30대의 10년이란 공백은 내 삶의 엄청난 결핍을 가져왔다. 그 10년이 또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당시 사법시험 준비할 때 떠돌던 이야기다.
모 대학 법대 K 교수(민법 전문)가 법적인 문제가 생겨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모욕감을 받았는지, 법조계에 혹여 자기 대학 출신 제자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사법시험을 합격하여 현직 판검사로 근무하는 제자는 거의 없었다.
이후 K 교수는 법조인을 키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학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법조인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한다. 해당 대학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대학 중 하나로 성장하였음은 물론이다.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의 검찰 조사를 바라보면, 어쩐 일인지 그때 들었던 일화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도 검찰 조사 중 자살하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검찰의 고압적 조사 관행이 쉬 고칠 수 없는 악습인가 싶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적어도 내게는 아무 쓰잘데기 없는 법 공부를 대학 4년 포함 14년이나 하였으니, 어리석은 중생이 겪고 있는 업보가 크다. 그럼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가끔 해드림출판사가 해드림판사로 읽히곤 하기 때문이다. 검판사는 아니어도 출판사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