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석가탄신일이 어버이날, 어버이날 읽으면 더욱 아픈 엄마의 일기 4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우수도서) 선정도서 민혜 ‘어머니의 불’중에서
1962년 5월 17일
날이 가물어 식수 때문에 우물에 물 짜러 다니느라 동네 여인들은 분주하다. 나도 물 때문에 근심이 많고 김치 거리를 씻으려 해도 물 걱정이 된다. 돈도 걱정, 물도 걱정. 근심이 많은 나에게 식생활 중 물도 걱정거리의 하나다.
이제나 물이 고였나 하고 밖을 내다보면 여전히 우물가에 사람들이 많다. 밤중에 물을 긷도록 하고 마루에 앉아 맑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고독을 잊으려 해본다. 사람이 좀 잠잠할 때, 자고 있는 진을 깨워 빨리 물 뜨러 가자고 하며 깨워가지고 갔더니 여전히 사람들은 물을 짜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도 물을 짜기로 하고 두레박을 우물 속에 내리고 한 번 두 번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몹시 차다. 어느 부인이 자다 말고 나왔다며 물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물을 푼다. 뒤이어 남자가 나와서 하는 말이, 미안하지만 아주머니는 우리가 다 푼 다음에 길으라고 한다. 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물을 득득 긁었다. 기다리면 또 다른 사람이 연달아 오는데 기다리라는 것은 물을 푸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흙탕물이나마 독이 가득하니 그만 긷자고 진이가 말한다. 휴~하고 맥없는 한 숨을 내쉬고 달빛을 따라 집에 들어와 보니 독에 물이 가득한 것이 쌀처럼 흐뭇하였다.
산동네 주택엔 상수도가 없어 산동네 사람들은 공동 우물을 먹었다. 수량이 풍부해도 물이 달릴 판인데 가뭄으로 우물 바닥을 긁듯 퍼내야 했다. 물 긷는 일은 엄마와 언니의 몫이었다. 언니는 고등학생이기도 했지만 나보다 힘이 좋았나 보다.
언젠가 나는 시골 아낙들이 머리에 물동이 이고 다니는 흉내를 내려했다가 목을 삘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 때문인지 엄마는 나에겐 물 긷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와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다. 가난한 살림에 힘들게 길어 먹던 우물마저 말라버렸으니 엄마의 심정은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엄마는 쌀독에 쌀이 가득하면 기뻐했는데 이제는 물마저 애를 먹인다. 흙탕물이나마 독에 가득 채워놓고 쌀독이 채워졌을 때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엄마. 그러고 보면 작은 기쁨이란 삶의 어떤 악 조건 속에서도 길어 올릴 수 있는 것 같다. 소설 ‘빨간 머리 앤’에도 이와 비슷한 대사가 나오듯 행복한 나날이란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자잘한 기쁨들이 이어지는 날들일 것이다.
1962년 5월 18일
내일, 내일 하면서 미루던 고추장을 오늘은 꼭 담그기로 하고 시작하였다. 혼자 하니 너무 힘들어 괴로웠다. 낙이 없는 내 일상생활은 취미라곤 아무것도 없다. 방탕해 집 나간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외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추장도 남이 하니까 해야지 하는 심정이다. 전에는 어떻게 하면 맛이 있을까 노력하며 힘 있게 했는데 지금은 맛이 있든 없든 관심이 없다.
일을 다 하고 보니 몸이 몹시 힘들었다. 자리에 누워도 아픔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수고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전에는 남편이 수고했다고 했는데, 하는 슬픔만 깃들 뿐 모든 게 귀찮다. 여자란 따뜻한 남편 그늘이 있으면 언제나 그게 전부라고 나는 믿는다. 여자는 그만큼 남편에 대한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처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건만 아내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남자가 적다고 생각한다. 그 절반만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어도 참 행복한 아내라고 나는 믿는다.
나 자신도 한때는 남편한테 열열이 사랑을 받아보았지만 지금 이처럼 아픈 상처를 받고 보니 남편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고 괘씸하기 한이 없다. 그러나 잊을 수 없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눈물 머금고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괴로움은 나 혼자만이 아는 바이다.
시간이 지나도록 열이가 돌아오질 않아 가슴이 조이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저녁 해놓고 있으니 그제야 열이가 들어온다. 참 반가웠다. 왜 늦었느냐 물으니 중재*가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고 오라 하는데 가도 되냐 하기에 승낙하였다. 잘 먹이지도 못하는 어미의 심정은 언제나 미안함뿐이라 한 끼라도 맛있는 것 좀 얻어먹었으면 싶어 가라고 하며 늦어지면 이따가 엄마가 데리러 간다고 했다.
일을 부지런히 하고 어둠 속에 열이를 데리러 갔더니 뜻밖에도 다리를 다쳐서 뼈가 나왔다고 한다. 정신이 아찔했다. 내 마음이 퍽 아팠다. 어미가 잘못했구나. 못 가게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열이는 나를 보고 눈물이 핑 돈다. 많이 아팠다는 뜻을 어미에게 전하는 눈물이 틀림없다. 데리고 돌아오는데 밤바람이 찼다. 오면서 시장에 널려 있는 과자와 사탕을 보니 열이가 다리를 절며 “엄마, 먹을 거…” 하며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른다. 나는 열이에게 “미안해 참어. 돈 생기면 사다 줄게” 하면서 열이의 아픈 다리를 만져주었다. 벗에게 하소연이나 하오.
그때는 엄마의 힘듦을 낱낱이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당연히 그러는 건 줄 알았다. 아버지를 그렇게 기다리고 깊이 그리워하는지도 몰랐다. 이 일기를 읽으며 옮겨 쓰다 말고 울컥했다.
우리가 정릉 살 때 이모네는 돈암동에 살았다. 중재는 이모의 넷째 아들로 내 동생보다 한 살 많은 형이다. 이모 댁은 살림이 넉넉했고, 시골에서 보내오는 쌀가마가 방에 그득했다. 우리 집에서 이모 댁까지는 한 이삼십 분 남짓 걸리지 않았나 싶다. 가는 길엔 재래시장이 있었고 굶주리던 시절이니 동생은 시장을 지나치며 과자가 무척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사 먹이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더구나 뼈가 나오도록 다리를 다쳐 쩔룩이며 걸어가는 아들이 사달라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