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종과 이순신을 고대한다…K 리더십

21세기 세종과 이순신을 고대한다…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

by 해드림 hd books

서언 : 나에겐 이순신, 리더십, 세종과의 인연이 있다.


2022년(임오년), 올해는 어느덧 해사 46기가 임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상은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세월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강물과 같이 도도히 흐르는 시간을 어찌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불현듯 이제까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하는 반성과 먹먹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가만히 돌이켜보았다. 1992년 임관한 후 지난 30년을 돌아보는 마음은 눈가에 주름만큼이나 나의 기분을 처지게 했다. 그래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심했다. 나는 이순신 제독을 닮으려고 해군장교로 20년 가까이 복무했고, 그 가운데 2000년 국방대학교에 리더십학과가 개설되면서 제1기로 공부도 했으며, 2006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가 출범하면서 교육담당관으로 리더십 & 이순신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 2010년 전역해서는 국방기술품질원에서 해군 무기체계 연구개발에 일조하면서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원으로 세종 리더십을 공부·연구·강의하는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 세종아카데미에서 박현모 교수(현 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의 세종학원론을 공부하다가 광화문광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광화문광장에는 경복궁에서 행차하신 세종대왕과 늠름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동상이 있다. 또 그 지하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제독을 안내하는 기념관이 있는데, 그때는 감히 두 위인을 함께 논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사)한국형리더십개발원(이사장 손욱)이 발족하면서 연구팀장으로서 세종과 이순신 리더십을 기초로 한 여러 교육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참으로 한국형 리더십(이하 K 리더십)의 전형(典型)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단 한 권으로 엮어낸 책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리하여 감히 내가 할 일은 두 분의 리더십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2021년 봄, 이제까지 두 위인을 공부·연구·강의한 내용을 한데 모아 책을 쓰기 시작하였고, 2022년 4월 28일(충무공탄신일)에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해 손욱 이사장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두 분의 리더십 이야기를 한 권에 담아낸 최초의 책이자 리더십 백과사전이요, 한국형리더십 바이블이고, 리더십 개발 매뉴얼이며, 앞으로 세종과 이순신 같은 리더 양성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서라고 칭찬하였다. 다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세종과 이순신, 두 위인의 리더십을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젊은 시절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리더십을 스스로 성찰하고 함양할 수 있는 ‘인생의 리더십 참고서’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하에서는 세종과 이순신으로 줄여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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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과 이순신을 5가지 인생테마로 바라보았다.


사람의 일생은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요,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폐쇄된 생애주기(Closed Life Cycle)’이다. 사람이 태어나 부모에게 길러져서,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여 업(業)을 이루고, 더욱 성장하여 사람을 사귀고 또 결혼하여 후세를 낳고, 장년에 이르러 행복을 누리다 노년에 저물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일생을 크게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했을 때,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이슈를 ‘5가지 인생 테마’, 곧 ‘리더십 마인드(Leadership Mind)’로 보았다.


“유년기의 태도는 평생 간다. 청소년기의 공부도 평생 간다. 청년기의 창의는 남은 인생을 책임진다. 장년기의 소통은 소중한 자산이다. 노년기에 성과가 없다면 대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5가지 주요 인생 테마 - 태도, 공부, 창의, 소통, 성과 – 가 골고루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며 살아가야 개인의 삶이 의미(意味)가 있고 윤택해진다고 보았다. 사람살이에 균형이 중요하듯이 ‘리더십의 균형(Balance of Leadership)’도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고, 그렇게 5가지 리더십 마인드를 반복해서 생각하여 잘잘못을 찾아보고 그때그때 수정·반복·강화해나가는 성찰 과정, 곧 1일·3성·5심(一日·三省·五心)의 맘첵(Mind check)을 통해 셀프리더십의 성찰과 함양이 가능해진다는 논리를 개발하여 적용했다.


그래서 이를 ‘맘 리더십(MAM Leadership : Mind check And Monitoring Leadership)’이라고 표현하였으며, 5가지 리더십 마인드에 대한 일일삼성의 두뇌 활동을 ‘맘첵(Mind check)’이라고 표현하였다. 맘첵은 하루의 리더십 중심과 균형을 잡아주고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리더십 자이로(Gyro)이다.


위 책에서는 5 리더십 마인드 - 태도, 공부, 창의, 소통, 성과 - 를 통해서 각각의 세종과 이순신 리더십 주요 에피소드를 살펴보고, 그리하여 세종과 이순신의 리더십 공통점을 종합적으로 체득하게 하여 5가지 리더십 마인드를 통한 세종과 이순신의 리더십 DNA 지도를 만든다. 그중에 나의 리더십과 일치하는 나의 리더십 DNA(핵심 키워드)를 찾고, 이를 통해 ‘나의 리더십 DNA 네트워크’를 완성한다. 그리고 끝으로 ‘맘첵(mind check)’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종상태, 곧 ‘나의 맘 리더십 DNA를 통한 강점경영(强點經營)’이다.


이 글에서는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중에서 핵심 골자인 5가지 리더십 마인드에 따른 세종과 이순신 리더십의 공통점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종과 이순신의 행적은 우리 문화의 커다란 저력(底力)이자 스토리텔링의 영감(靈感), 영원한 리더십 유산(遺産)이다. 대체로 세종은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를 잊지 않고 과학적 리더다운 모습으로 옛것을 참고하여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각종 TF를 운영하면서, 시스템 분석 차원에서 조정의 관료와 백성을 살피며 20여 년 전 창업된 조선의 수성기를 이어 나가는 공정과 변혁의 리더십을 펼쳤다. 한편 이순신은 문무를 두루 갖춘 상태에서 기욕(嗜慾,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심)을 행하듯이 자신의 멀티태스킹 능력에 의한 예술적 리더십과, 뛰어난 상황 판단, 현장 장악과 격의 없는 소통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혼신의 리더십을 구사하였다. (보다 심화된 내용의 확인은 위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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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종과 이순신의 리더십은 ‘K 리더십’의 판단기준이다.


만약에 세종과 이순신이 콜라보를 이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세종이 중국어에 능통했던 이순신의 현조부 이변을 귀하게 대우하는 모습이나, 또 세종이 하경복과 최윤덕, 김종서 등을 대하는 실록 기사를 보듯이 임금 세종과 장수 이순신의 콜라보는 서로 간의 군신유의(君臣有義)로 멋진 팀워크를 펼쳤으리라. 이제 5가지 리더십 마인드 관점에서 세종과 이순신을 간략히 살펴보자.


가. 태도 : 세종과 이순신은 신중하고 침착하며 자기통제력과 일의 기미를 파악하는 혜안이 있었다.


태도는 마음가짐(心術)이다.세종과 이순신의 태도를 통해서 볼 때, 성품(性品)과 도리(道理) 측면에서 공통점은, ① 먼저 세종과 이순신은 모두 성품이 신중하고 침착했으며, 자기통제력이 뛰어났고, 일의 기미를 잘 파악하는 혜안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 위인은 성실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일처리를 과감하게 하였다. 세종이 부지런히 정사와 경연에 힘쓴 것이나 이순신이 7년간의 난중일기를 적은 것은 그들의 성실함을 대변한다.


② 세종은 왕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였고, 이순신은 장수로서의 도리를 다하였으며, 두 위인은 자신의 위치에서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 아들, 형제와 족친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였다. 세종은 성군(聖君)의 대명사였으며, 이순신은 공복(公僕)의 모범사례였다.세종은 스스로 말하기를, “인군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왕이 된 자”라고 하면서 스스로 고통스런 일을 감당하여 뒷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또 편안할 때 위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이 있었으며, 이순신은 나라에서 그를 불차탁용하여 써주었기에 자신의 말대로 충의(충성과 절의)로써 몸을 바쳐 보답했던 것이다. 또 세종이 양녕이나 효령대군을 대하는 것을 보면 찐한 형제의 정(情)이 묻어나고, 이순신이 작고한 형 희신과 요신의 아들들을 거둬들여 친자식들보다 더 잘 대해준 일들을 보면, 두 위인의 일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두 위인은 누구보다도 효(孝)를 강조하고 실천하였는데, 세종은 효를 정치의 근간으로 판단하여 <삼강행실도>를 편찬, 민도(民度)를 높이려고 노력하였으며, 이순신은 어머니를 가까운 거리에서 공양하였고, 늘 어머니의 안부를 걱정한 효자였다.


③ 두 위인의 활약에 힘입어 조선은 질서를 확립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고, 임진왜란의 혼돈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위인에게도 공통된 리더십 리스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강 문제’였다. 세종은 40대로 넘어가면서 재위 20년부터 당뇨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시력을 많이 잃고 의욕이 현저히 저하되었으며, 이순신은 왜란 중 장기간 해상지휘관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창궐하는 역병에도 노출되고, 적에게 총상을 당한 부위도 쉽게 낫지 않아 고생하였으며, 특히 전쟁 중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병이 생겨서 밤잠을 설치며 힘겨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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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공부 : 세종과 이순신은 아웃라이어가 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고, 풍부한 독서를 통한 자기성찰과 평생학습을 하였다.


공부는 여공전부(女功田夫)이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세종과 이순신의 공부를 통해서 볼 때, ① 먼저 두 위인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해라”고 한 말을 듣고, 이를 특별한 기회로 받아들여 경사(經史)에 대한 독서를 비롯하여 악기와 그림 등 각종 기예(技藝)에 이르기까지 비범한 재능을 갖추었고, 결국 수불석권(手不釋卷)의 근성으로 독서와 지적 리더십을 통한 총민함을 선보여, 태종으로 하여금 양녕대군을 대신하는 택현(擇賢)의 세자로 새로이 책봉되는 인생 역전을 이루었다. 한편 이순신은 형들을 따라 경서를 읽고 문과의 길을 공부하다가 자신의 무재(武才)를 확인하고 또한 멘토 장인 방진(方震)의 도움으로 10년간 무과를 준비하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무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위인은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아웃라이어(Outlier)’가 되었다.


② 두 위인은 독서량이 대단했는데, 세종은 <구소수간>의 얘기에서처럼 몸이 아픈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이순신 또한 무과시험에서 장량의 죽음에 대하여 답변할 때, 방대한 <자치통감>에 나오는 그 근거를 제시하여 시험장의 감독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한 두 위인은 글쓰기 능력도 뛰어났는데, 세종은 <자치통감강목>에 대한 해설을 직접 달아 <자치통감강목사정전훈의>를 편찬하면서 기억력이 점점 나아졌다고 하였으며, 이 책자는 동시대 문인들의 격찬을 받았다. 한편 이순신은 7년간의 수양록 <난중일기>와 류성룡 등 지인들과의 편지, 그 유명한 ‘상유십이(尙有十二)’ 장계 등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필력(筆力)이 있었다.


③ 두 위인은 공부하기를 인생의 어느 한 시기의 공부에 그친 것이 아니라 평생학습으로 꾸준히 진행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하여 세종은 경연(經筵)을 통해 토론을 즐기는 ‘낙어토론(樂於討論)의 군주’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며, 싱크탱크 집현전(集賢殿)을 운영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한편, 이순신은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전술토의와 활쏘기를 늘 잊지 않았고, 통제영에는 운주당(運籌堂)을 운영하여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장수와 병사 누구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같이 토론하는 장(場)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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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창의 : 세종과 이순신은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으며 몰입을 통해 재난과 전투문제를 해결하였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창조물을 세상이 내놓았다.


창의는 유레카(갑작스런 깨달음)이다.세종과 이순신의 창의를 통해서 볼 때, ① 세종과 이순신은 어떤 사건이나 일이 성사될 때 놀라운 집중력으로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이른바 ‘선발제인(先發制人)’, 곧 남의 꾀를 미리 알아차리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아냈다. 세종은 재위 1년(1419) 왜구 대부분이 명나라로 노략질을 떠난 대마도를 공략하는 대규모 원정작전을 펼쳤다. 또 압록강 북쪽 건주여진 이만주 세력이 성장할 때는 두 차례의 파저강 토벌(재위 15년과 19년)을 통해 선제적 공격으로 여진족의 침입을 저지하였으며, 특히 세종의 6진 개척은 동북의 여진족 동맹가첩목아와 그의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비롯되었는데, 세종은 이 공백을 ‘하늘이 주신 기회(결정적인 타이밍)’로 생각하고 문무겸전 김종서로 하여금 행성(行城)을 쌓고 백성들을 이주시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강역(疆域)을 완성하였다.


이순신 또한 현장 리더십의 일인자답게 생각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1583년 이순신은 함경도 경원의 건원보 권관으로 부임하여 최전방 접경지역에서 오랑캐 울지내를 꾀어 사로잡는 큰 공을 세우는데, 이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이순신의 담략(담력과 지략)을 잘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또 임진왜란 중 계사년(1593) 7월 한산도 이진을 통해 왜적이 서해로의 진출을 원천차단한 것이나, 정유재란 시 명량에서의 물때(정조)를 고려하여 이순신의 대장선이 홀로 분전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것 등은 이순신이 결정적인 타이밍(골든타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끝까지 버티며 집중을 지속한 결과였다. 이렇게 세종과 이순신은 앞날을 내다보고 지금을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가 있었다.


② 세종과 이순신은 몰입(沒入)을 통해서 마치 실타래를 풀 듯재난이나 전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데, 세종은 강원도대기근(재위 5년)이나 병진대가뭄(재위 18년)의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늘의 징계’라 여겨 크게 몰입하였으며, 또한 자격루를 만들어 한양 백성들이 시간을 동일하게 알도록 광화문을 통해 보신각에서 종을 쳐 시간을 알려주었고, 오목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들면서 혜정교와 종로에 십이지신상을 설치하여 시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전국의 노련한 농부들에게 물어 농사 잘 짓는 방법을 <농사직설>로 만들어 배포하면서도 관청에서 강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백성들이 써보고 차츰 농사에 반영하도록 하였으며, 김화의 부친 살해사건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곧 형량을 가중하는 방도가 아닌 효행을 장려하는 <삼강행실도>를 만들어 각 고을에 내려줌으로써 서서히 민도(民度)를 끌어올리는 데 몰입하였다.


이순신 또한 임진년의 한산대첩에서 보듯이 능동적인 몰입을 통해 목동 김천손의 정보를 활용하여 적을 쳐부술 계획을 세우고 현장지휘관답게 견내량에서는 좁은 수로 환경을 고려하여 곧장 쳐부술 작전을 일부 변경하고, 적을 한산도 옆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일제회전으로 포격함으로써 왜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부산포해전에서는 500여 척이나 되는 압도적인 적 세력에 주눅들지 않고 과감히 해전에 몰입하여 100여 척의 적선을 격파함으로써 적들에게 조선 수군은 무섭다는 심리적 위협을 가하였고, 정유재란 시 명량에서의 선전(善戰)과 역전승, 노량에서의 순국(殉國)을 통해 자신을 잊은 몰입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③ 세종과 이순신의 창조물은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오늘날의 과학혁명과 같다고 판단되고, 이순신이 나대용과 함께 창제한 거북선은 전장에서 임기응변을 끊임없이 전환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렸던, 말 그대로 신출귀몰한 귀선(鬼船)이었다. 두 위인이 무언가를 창조할 때는 먼저 옛일을 상고하는 계고(稽考)와 다방면의 실험(實驗)과 항상 실용(實用)을 생각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한산5.jpg 영화 한산

라. 소통 : 세종과 이순신은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현장 리더십과 감동적인 연설로 팔로워를 변화시켰으며 토론을 즐겨하였다.


소통은 진정성이 있어야 가능하다.세종과 이순신의 소통을 통해서 볼 때, ① 세종과 이순신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심통과 동심합력 능력이 뛰어났다. 세종은 특유의 ‘경청하고 사람들을 동조하고 청유하며 인정하는’ 레토릭(rhetoric)으로 신하들의 열정을 끌어냈으며, 이순신은 상하가 혼연일체가 되도록 동심합력하는 일을 많이 만들어 같이 땀 흘리고 같이 배에서 자고, 때로는 같이 슬퍼하고 또 기뻐하며 부하들과 동고동숙(同苦同宿)하였다. 원균 휘하의 이영남이 이순신에게 매료된 것이나 사도첨사 김완이 마음을 돌려 전투의 맹장이 된 것이 그 예이다.


② 세종과 이순신은 현장에 답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어릴 적 아버지 태종을 따라서 행행(幸行)과 강무(講武)를 나가 민심을 접했고, 임금이 되어서도 직접 들에 나가 가뭄의 피해를 확인하고, 강무를 집행하여 민심을 확인하였다. 이순신은 초임장교 시절 북방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늘 현장점검을 통해 적·아의 장단(長短)을 잘 파악했으며, 왜란 전부터 해상에서의 훈련과 백성들과의 스스럼 없는 대화와 배회경영(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으로 현장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이순신 사후 무술년(1598) <선조실록>에도 “이순신은 기율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고 기록되었다.


③ 세종과 이순신은 모두 감동적인 연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강력하게 추진토록 하거나 비통함과 우울증에서 벗어나 얼른 재기(再起)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종 15년(1433) 1월 19일, 제1차 파저강 토벌을 준비하면서 세종은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 등에게 일종의 ‘토벌군 출정식 훈시’를 통해 건주여진 이만주 세력에 대한 강력한 선제적 정벌을 지시한다. 또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5월 1일, ‘진해루의 결의’를 통해 결연한 ‘출사표’를 던져 출전 의지를 강조했으며, 정유년(1597) 8월 19일, 칠천량 패전으로 상처와 손상을 당한 수군을 만나 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라는 ‘회령포 연설’을 통해 쓰라린 감정을 어루만지며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기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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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성과 : 세종과 이순신은 나라의 질서를 정립하고 혼란을 수습한 마스터였으며, 위기 극복을 통해 당대의 사람들에게 각인된 진정한 리더였다.


성과는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세종과 이순신의 성과를 통해서 볼 때, ① 먼저 두 위인은 한 시대의 질서 정립과 혼란 수습의 마스터였다. 세종은 조선의 창업기를 잇는 수성기의 토대를 마련하였는데, 이는 세종의 선제적 추진 노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이 아비규환의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희망을 쏘아 올린 것은 이순신의 유비무환으로 만들어진 결과이지 결코 우연에 의해 된 것이 아니다. 세종은 회고하기를, 북방영토의 개척과 훈민정음 창제, 수령고소금지법 등 국익과 백성의 안녕과 관련된 사항은 신하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독단적으로 추진하였다고 토로하였다. 이순신은 신묘년(1591) 전라좌수사 부임 후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군비를 확충하고 거북선을 새로이 건조하여 해상시험하며 유비무환의 방비태세를 먼저 갖추고 난 후에 적과 대치하는 형세를 취하였다. 두 위인은 먼저 해야 할 일을 우선하여 잘 찾았다.


② 세종과 이순신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각자의 위치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는데, 세종은 임금으로서 ‘임사이구 호모이성(臨事而懼 好謨而成)’의 지혜를, 이순신은 해상최고지휘관으로서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則死 必死則生)’의 용기를 강조하였다. 세종 31년(1449)에 명나라 황제의 타타르 원정 중 발생한 ‘토목보의 변란’은 조선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세종은 담담하게 역사적 사례를 들면서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지혜를 발휘하여 성취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순신은 정유년(1597) 명량해전 전날 밤에 부하 장수들에게 신칙하기를,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로써 뒤로 물러나지 말고, 용기백배하여 죽음을 각오하자고 강조하고, 이를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③ 세종과 이순신은 동시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진정한 리더였다. 세종은 다양한 인재를 모으고 활용한 ‘해동요순(海東堯舜)’이었으며, 이순신은 기율과 사랑을 두루 갖추어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던 ‘수호신(守護神)’이었다. 두 위인은 인재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였다. 세종은 인재의 감식가로서 황희에서 장영실, 이예, 권채, 신숙주에 이르는 신분을 초월하여 다양한 ‘인재의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순신은 주어진 인재들을 아끼고 사랑하여 각자 최고의 결과를 내도록 독려하였으며, 한산대첩 장계에도 보듯이 ‘당초의 약속’을 굳게 지켜 하나의 전공이 있는 자라도 모두 장계에 이름을 올려 부하들의 심정을 감동케하고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순신은 또한 스스로 청렴하고 신중하며 부지런하여 부하 장수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도 부하들의 충의와 담략을 유념하여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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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언 : 21세기 세종과 이순신을 고대한다.


위에서 우리는 인생의 5가지 테마 – 태도, 공부, 창의, 소통, 성과 – 관점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제독의 공통점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두 위인의 리더십 공통점은 한국형 리더의 핵심적 특징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리더십을 함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두 위인의 리더십 이야기를 꼼꼼히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두 위인을 움직이게 하는 많은 핵심 키워드(DNA)가 존재하며, 이 중에 나와의 상관성이 높은 것을 선택하여 나의 리더십 강점관리에 활용해야 한다.


고래로 우리나라는 샌드위치 형국이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전지(接戰地)였으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놓고 보면 그 위태로움을 확연히 알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하나의 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북방의 경계를 철저히 하며 오직 나아갈 길은 바다를 통한 경제 부흥뿐이었고, 바다는 생명선이었다.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잘 실천하여 이제는 세계가 존중하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사(世界史)에서 보듯이 일찍이 해양으로 눈을 돌렸던 나라들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현재의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 또한 해양에서의 패권을 놓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대치를 하고 있다.


21세기는 경제 발전에 기반한 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2021년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주요한 문화콘텐츠 하나가 세상의 관심을 끌고, 이를 통해 세상에 그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갖는 관심이 커지고, 우리 또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향상된 시대이다. 한편으로는 좋은 문화를 물려주신 선조들에게 큰 감사를 드려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유구한 문화를 후손들에게 잘 보전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이제는 우리가 시대의 ‘연결자(Linking Pin)’의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롭게 ‘세종과 이순신의 리더십 DNA’를 온축(蘊蓄, 지식이나 학문을 깊이 쌓거나 맘속에 깊이 쌓아 둠)하여 얻은 자부심과 긍지로 우리에게 닥쳐올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간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또 과학·기술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리더십 역량이 더욱 배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21세기에도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같은 리더가 출현하길 고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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