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고향 시골집 그리고 어머니,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빠져도 바람 빠진 풍선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 삼위일체 중심은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고향은 마음뿐이다. 갈수록 멀어지는 고향, 고향 집도 사라진다.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 선후배들만 봐도 그러하다. 퇴직하면 고향으로 돌아와 살겠다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가 삶의 한계를 느낄 만큼 질곡을 겪으며 살아냈던 고향, 내 정서의 시원인 고향에서 마지막 내 삶의 꽃을 피우려는 게 바람이다. 훗날, 훗날, 먼 훗날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머니가 안 계셔도 어머니의 자취소리가 구석구석 깊이 벤 그곳을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를 정취(情趣)라 한다. 아담한 정취가 있는 풍경을 풍취(風趣)라 한다. 적어도 내게 고향 시골집은 이 정취와 풍취의 초꼬슴이다. 어머니가 계시니 내 삶의 으뜸 안식처이기도 하다.
시골집에서 겨울 풍정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것이 아궁이의 장작불이다. 다행히 시골집에는 아궁이 하나를 살려두었다. 겨울 날 자식이 내려간다 하면, 어머니는 장작불부터 지핀다.
고향 시골집으로 내려오면 나를 잠시 행복하게 하는 운치의 잉걸불. 아궁이 하나 살려두니 겨울을 몹시 싫어하는 나를 따스하게 품어주곤 한다. 시골집에는 방이 3개다. 조카들이 결혼을 하여 식구가 늘어가니 방 3개는 적다. 조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할머니를 뵈러 내려오면, 어머니 홀로 고요를 지키며 살던 집에는 금세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찬다. 하지만 대부분 여름휴가 즈음 내려오니 방이 적어도 별 문제는 없다. 텐트를 치고 마당에서도 자고, 평상이 두 개나 있어서 모기장만 있으면 하늘을 지붕 삼아 여름밤을 보낼 수도 있다.
겨울이면 나 혼자 내려가거나 동생이랑 둘이 어머니에게 가곤 한다.
아궁이가 달린 방은 석유 보일러 겸용으로 쓰는 방이다. 따스한 온돌방에서 밤새 몸을 뉘다 보면 회사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 아침 새소리가 더욱 맑게 들린다. 겨울 날 즐기는 아궁이의 장작불 운치를 도시 사람들은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잉걸불을 바라보며 아궁이가 뜨겁게 뿜어내는 열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보면, 뼛속으로 파고드는 열기가 아픈 곳으로도 스며들어 상처조차 치유할 듯한 기분이 든다.
얼굴이 홧홧해지는 잉걸불은 깊은 상념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론 내 안의 모든 정신적 질곡을 불태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궁이 앞에서 떠오르는 어머니의 심상(心象)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내년이면 91세가 되는 어머니, 그럼에도 어머니 곁은 지켜주지 못하는 아들, 어머니가 없어도 이 아궁이가 주는 겨울 열기를 지금처럼 즐길 수 있을까…. 어쩌면 아궁이의 잉걸불 열기는 냉기로 가득 차 있을 가슴은 데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골 아궁이에는 큼직한 무쇠솥이 걸려 있다. 장작불을 지필 때면 늘 물만 부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젠 요리를 해 어머니랑 먹어볼 생각이다. 맨 먼저 생각한 것이 돼지 수육이다. 황기며 당귀, 계피, 감초, 생강 등을 넣어 장작불로 고기를 삶으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삼겹살 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옛날 어머니들은 생솔가지를 아궁이에 넣어 그 열기나 솔 향기로 하체의 냉기를 다스렸다고들 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생솔가지를 아궁이가 터질 듯 밀어넣어 불을 지필 때면, 그 솔향기가 맵기도 하지만 솔향이 그윽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 자란 쑥도 여름날 베어놨다가 겨울이면 어머니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쑥 향기를 즐겨도 될 일이다. 생솔가지나 쑥을 태우면 모르긴 해도 온돌방 벽 틈으로 그 향기가 스며들지 싶다.
단순히 온몸을 풀어주는 열기만 즐기기보다, 건강한 향기도 내뿜는 아궁이의 운치를 높일 생각이다.
다만, 허기진 어린 시절 고구마를 하도 질리도록 먹어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을 생각은 없다. 생선이라면 모를까….
나는 어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면 가슴이 열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날에는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려가면 가슴이 열리고 올라오면 가슴이 닫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