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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03. 2023

15.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삶 저지하기

나의 몸은 온몸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인간은 누구나 관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하루를 살아간다.

각자가 가진 무의식의 중심에는 중력이 존재한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무의식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신체라는 행성은 그 무의식의 중력과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태어남과 동시에 묶인 채로 살아간다.

이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날까지 유효하다. 


당신의 신체와 정신과 무의식은 하나의 중심축을 가지며 평생 연계되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


어느 순간 불필요해진 행동을 해가 뜨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냉장고 안의 시원한 맥주를 하루에 한 캔 씩 습관적으로 열지 않았는가?

청량하고 시원한 목 넘김 전에 경쾌하게 열리는 캔 따는 소리에 절로 '크으' 하는 내면의 소리를 내진 않았는가? 나는 밤 11시만 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시원한 맥주가 그리워졌었다.

나는 굳이 필요와 이유를 따지지 않고 아침마다 계속해서 커피를 들이부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커피 한잔이 정말 잠을 깨우고 상쾌한 아침을 열어가는데 나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커피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의해 커피를 구매하고 마셨다. 

커피가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하고 뭔가 정리가 안된 거 같고 휴식을 취하지 못한 거 같았다.

머리가 무겁거나 집중이 안되면 마시지 못한 커피를 탓했다. 


'커피를 못 마셔서 내가 이래.'


아니다. 당신은 그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뿐이었다.

커피가 없는 하루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 정확하게는 커피가 없는 하루를 상상하지 못하게 막는 나의 몸

이것이 관성이다. 


나는 커피를 끊었다. 

관성에 의해 마시던 커피의 공급을 멈춘 것이다. 

커피가 내 몸에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에게 먼저 통보하고 협의를 구했다. 


1. 나는 신장이 좋지 않아. 커피는 이뇨작용에 유리해서 신장이 안 좋은 사람은 마시면 안 돼.

2. 나는 당분간 경제적으로 어려워. 매일 커피 3잔에 1만 원가량을 쓰는 소비는 나에게 맞지 않아.

3. 나는 수면 장애가 있어 나는 그 원인을 술과 커피 그리고 운동부족으로 보고 있어. 

4. 나는 면역력이 최근 급격히 떨어졌고 염증수치가 높아 작은 감기에도 크게 아파. 면역력을 낮추는 음식은 피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해.


명확하게 커피가 내 몸에 유익한 부분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 

당위성의 확보차원에서 정신을 강화하고 몸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어느 날부터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끊었고 나는 어떠한 신체의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커피가 나의 신체에 불필요한 음료라고 인정하는 순간 카페인이 습관적으로 휘젓던 나의 몸은 카페인이 없어져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20년 넘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시던 2잔에서 4잔 사이를 마시던 커피로부터 자연스럽게 해방되었다. 마치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사이가 그간 서로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관성에 의해 살아가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라.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러하다.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관성에 의해 살아가고 움직인다. 

주체적인 삶을 한 번도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은 도무지 의식적인 습관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당신을 강인하게 만드는 건 규율과 일관되고 꾸준한 의식적인 습관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아온 몸의 입장에서 온몸으로 극렬한 거부감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내 몸은 변화를 미치도록 두려워하고 경멸한다.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 당신이 변화하지 않고 그냥 예전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운전대에 앉았는데 기억 없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과 같다. 

목적지에 도착은 했지만 운전의 기억은 잊어버렸다. 

밥을 먹고 지하철에 끌려가듯 몸을 싣고 회의시간에는 아무런 안건도 내지 않는다. 

질책은 질책대로 흘려버리고 점심 메뉴 선정에 힘쓰거나 커피타임에는 조금씩 시간을 늦춰가며 1시 정각이 아닌 살짝 5분 늦게 들어가길 희망한다. 

퇴근 시간까지 시계만을 노려보며 지하철이 오는 시간에 맞춰 퇴근하길 염원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배달음식을 시켜두고 오자마자 샤워하고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을 하는 행복에 만족을 느낀다. 

이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바라마지 않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인가. 

이게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삶의 궤적인가?

월급은 받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달을 기억하지 못하진 않는가?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는 12개월이 모여 일 년을 구성하고 10년을 구성한다면 당신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이렇게 살고 나서 나이가 들었다고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거리에 답이 수월하게 찾아오길 바라는 것은 좋지 못한 심보이다.

고민하지 않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공부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덜 움직이고 더 받아내길 원했다. 

나 또한 그러했고 과거의 나를 후회한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다 해도 혹은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그렇게 행동할 공산이 크다.   

이제는 모든 것을 멈추고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다. 


의식적인 나를 디자인하고 좋은 습관을 장착해야 한다.

좋지 못한 습관은 나의 몸을 떠나게 해야 한다. 

관성에 의해 부표처럼 떠다니던 무의식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은 아무런 의식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의식적인 습관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건강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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