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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02. 2023

내가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야기.

카지노를 이길순 없어요.

강원랜드가 처음 개장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과연 카지노 산업의 도입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복권사업과 경마, 주식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이러한 사업을 시행할 때는 탐욕이 대놓고 전면에 깔려있는 경우가 100%이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세금을 뜯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니 그 또한 기개라면 기개였다. 그 거대한 탐욕 앞에 누구도 선뜻 '진정한' 철회를 요구하진 못하고 그저 내심 '한 조각' 혹은 '한자리' 떼어주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홀로 청렴한 척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 정도의 나른한 구호를 외쳐봐야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미리 단언해 두는 측면도 있겠다. 당사자가 되겠다고 선포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탐욕이 꿈틀거렸다.


개장한 강원랜드를 찾아가는 길은 매우 꼬불꼬불한 개울가의 길을 끼고 있었다. 훗날 쭉쭉 뻗은 고속도로가 들어섰지만 그건 순전히 카지노에 돈을 빠뜨린 국민들의 노름돈으로 건설된 고속도로였다. 물론 나 역시 고속도로의 20cm 정도를 만드는 기여를 했을 것이다. (당시 건축 시세?로는 고속도로 1m를 만드는데 5,000만 원 정도가 든다는 소리가 있었다.)


작정하고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니었다. 리조트에 스키를 타러 가서 어쩌다 한번 베팅을 해보았더니 재밌더라 정도의 일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렇다고 마구 흥미를 느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몰입하지는 않았다. 옆자리에 한번 앉았던 부부(교사부부)는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와 정해진 금액만 베팅을 기계적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한 투자(?)가 얼마나 효과와 결론을 가져왔을지는 모르지만 딱히 좋은 생각은 아닌 듯했다. 나도 돈을 벌어보겠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있었긴 했어도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없는 시간을 내어가며 드나들 정도의 배짱은 없었다.


간간히 가기는 했어도 몇 년에 걸쳐 대충 30번가량은 드나들었으니 중독자 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이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주로 바카라나 룰렛을 했었는데 푼돈을 가지고 길고 오래 놀자는 생각뿐이었다. 당시에는 테이블에서 누구나 흡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 20시간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밥 먹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8시간을 카지노 안에 상주했다. 머리카락과 옷가지에 진한 니코틴이 절어있는 향이 배어버린다. 여분의 옷이 없는 경우 그 옷을 3일 내내 걸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흡연자인 나는 그런 사실조차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카지노에 빠졌다. 푼돈으로 베팅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없어 멀찍이 뒤에서 베팅을 했다. 나중에는 한쪽 무릎이 아파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 후로도 휴가 때나 연휴에는 가끔 들러 게임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은 따고 어느 날을 잃었지만 늘 그렇듯 어느 날의 객기에 결국은 200만 원을 하루 만에 날려버리고는 카지노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룰렛에서 숫자'2'에 100만 원씩 베팅을 했다가 2번 연속 빗나가 버린 것이다. (빨간/파랑 컬러에 베팅했다.) 숫자 2 옆의 '0'에 들어가는 일이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나왔다. (강원랜드에는 제로 '0'와 더블제로 '00' 방식으로 룰렛을 운영한다.) 당시 꽤나 쌀쌀한 날씨였는데 지금의 와이프와 강원랜드 앞의 호수 공원을 하염없이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자고 작심했었다. 정말 싱겁게도 그렇게 강원랜드에 다시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23년 카지노라는 드라마의 호구 아저씨를 보자면 저렴한 수업료를 낸 셈이다. 중년 이후의 도박, 춤, 유흥은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확률이 매우 높은 것 같다.


'대신 나는 인터넷 도박에 빠졌다.'


멍청한 나는 역시나 흔들리는 인생을 스스로 창조해 냈다. 정확히 기억하기로 2009년 초였다. 강원랜드까지 차를 몰고 가지도 않고 편하게 앉아 인터넷을 통해 카지노게임을 할 수 있는 건 우선 교통비만큼을 벌고 시작한다는 기적의 계산법을 창조해 냈다. 나의 주식 실패기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주식의 실패 이후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않기로 했으나 도박의 '도'는 꺼낸 셈이 된 것이다. 이는 '주도'면밀했다는 말장난 정도의 감상을 지닐 만큼 큰 금액을 베팅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치부하고 싶다.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치고받고 난타전을 벌인 끝에 나는 실력 발휘를 하고야 만다. 무려 '100만 원'을 따버리고만 것이다.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어떤 힘에 의해 따면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고 잃으면 끝까지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름 피땀 흘려 고난과 인내, 역경을 뚫고(사실 사설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쉽게 번 돈을 보람차게 쓰기로 했다. 지금의 와이프이자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50만 원 상당의 취미용 재봉틀을 사주었다. 둘이 옷도 사고 맛있는 소고기도 구워 먹고 즐거이 탕진했다. 나름 합리적 소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 졸이며 하루 5만 원씩을 벌어 차곡차곡 적금 들듯 도박사이트에서 뽑아낸 현금을 기분 좋게 써버린 것이다. 나는 이를 꽤나 오랜 시간 상당한 영웅담으로 주변에 썰을 풀곤 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는 소리 정도의 시들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경찰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다.'


은행에서 먼저 계좌를 확인했다는 서면통지가 먼저 날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ㅇㅇ경찰서 어디 어디로 출석하라는 소환장이 날아들었다. 그다지 큰 죄명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자칫 감옥에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초범'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2009년 볕 좋은 가을의 어느 날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경찰서에 자진출두를 하게 된다. 조사과정은 매우 단순했다. 마주 앉은 형사는 영화나 tv에서 보던 대로의 그 무미건조한 어투로 취조를 시작했다. 사실은 조사 정도겠지만 경찰서에서 처음 조사를 받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문실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은행 계좌 내역을 마카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계산기를 두드리던 형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땄네요?"

"아...... 네."


약간 우쭐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몰라 황급히 겸손과 반성의 표정을 장착했다.

그따위 표정이 나에게 득이 안될 거라는 정도의 사리분별은 해낸 것이다.


"이번에는 벌금형이지만 다음에는 구류부터 시작합니다."

"고지서 날아갈 테니 납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90도로 하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얼마 후 날아온 고지서에는 정확히 '100만 원'이 벌금으로 찍혀있었다. 이미 써버린 100만 원을 다시 게워낼 수는 없으니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벌금을 납부했다. 도박으로 딴 돈은 써버렸고 벌금은 냈으니 결론은 100만 원을 잃은 셈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는 작게나마 인과응보 같은 소소한 징벌이 내려진 셈이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내가 왜 이러한 일을 금액단위로 기억하는가 하면 이 또한 연유가 있다. 내가 벌금을 두드려 맞은 날 인기배우 '주'모 배우 또한 벌금형을 받았다고 뉴스에 크게 났기 때문이다. (대서특필이라고 하면 이제는 정말 시대에 안 맞는 이야기 같다. 포털의 메인을 장식했다 정도가 알맞겠지만 말이다.) 한해에 수십억을 벌며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그 배우는 벌금으로 80만 원을 통지받았다.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일개 시민인 내가 남몰래 인터넷 도박을 해서 100만 원을 따버린 사건에는 벌금 100만 원을 부과하고 유명 배우에게는 80만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푼돈을 부과한 것이다. 벌금의 액수로만 보면 내가 마약사범보다 더 큰 중죄를 저지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쪽의 폐해랄 것도 없이 둘 다 나쁜 일이지만 갸우뚱한 생각이 드는 건 당사자로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옹졸한 나의 종지 그릇만 한 심성이여.)


도찐개찐이다. 나는 어쨌든 빨간 줄 까지는 아니지만 경찰에 도박에 대한 경력이 한 줄 정도 추가되어 있을 것이다. 2회 차가 된다면 뭔가 다른 물리적 제재가 무겁게 가해질 것이다. 100만 원의 벌금과 형사의 경고는 제대로 먹혀들었고 나는 그 후로 일절 도박에 손대는 일은 없었다. 어찌 보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꽤나 괜찮은 장사였다. 해외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100만 원을 뜯어다 국내에서 소비하고 100만 원은 국고로 귀속시킨 '애국자'를 만난 것이다. 그게 '나'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치부하시라. 한때는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유쾌하게 넘기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충분히 반성했고 죗값도 치렀다. 그리고 다시는 내 인생에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위성을 확보해 두었다. 나이 들어 빠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은가. 한때의 치기 어린 선택이었고 우당탕탕 멋대로 살아온 젊은 날의 작은 반항이자 방황이었다.


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의외로 참 나쁜 새끼 다운 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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