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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05. 2023

골프채를 팔아버리다.

애증의 스포츠.

골프라는 운동은 나와 맞지 않다.


26살 즈음 선배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선배는 골프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골프 신봉자였지만 나는 썩 내키진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골프에 입문하기 위해 이것저것 장비를 많이 사야 한다는 것부터가 부담이었다. 힘든 직장 생활 중 새벽에도 주말에도 필드를 나가는 것도 고역이었고 퇴근 후에 스크린 골프를 치고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잔하고 하는 것들이 20대의 나에게는 직장 생활의 연장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퇴근을 했는데 계속 직장 상사들과 놀고 있어야 하다니.'


접대를 할 때도 있었다. 건설사 과장과 필드를 나가 처음으로 접대 골프라는 것을 쳐봤다. 그린피, 카트비, 캐디피, 잃은 돈을 다 해서 100만 원가량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돈일지 몰라도 15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하루에 100만 원을 골프에 쓰는 것은 손 떨리는 일이다.


한 타당 1만 원은 거의 범죄 수준의 도박이었다. 더군다나 거래처와의 게임이니 적당히 져줘야 한다는 압박감은 안 그래도 안 맞는 공을 더 안 맞게 했다. 그런 자리에 껴있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스럽고 실망스러운 하루였다.


그래도 어차피 시작한 거 더 잘 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연습장도 끊어보고 야외 연습장에서 정기권을 끊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어지간히 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속 깊이 이 운동은 나와 맞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 다니고 있으니 참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골프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2022년에 다다러서야 겨우 가지고 있던 골프채와 장비들을 몽땅 처분해 버렸다. 비싼 가방부터 골프채 풀세트와 자질구레한 것들을 팔아버리고 이제 골프와는 안녕을 고했다. 나는 골프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세상 편할 수가 없다.


골프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낮은 체중에 나풀거리는 골프웨어는 여간 헐렁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괜스레 불쌍해 보이거나 동정심을 자아낼법한 옷태였다. 멋지게 채를 휘두르고 싶었지만 뱃심이 없다 보니 늘 휘청거리며 들쑥날쑥한 기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주말이면 가장 저렴한 새벽 티를 치기 위해 2시부터 잠에서 깨 차를 몰고 가면 정말 만감이 교차했었다. 좋아하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끌려가는 건 도살장에 가는 소 같은 마음이었다.


살면서 다시는 골프를 칠 일은 없어 보인다. 몸에 힘이 되살아나 드라이버를 팡팡 쳐댈 일은 내생에 다시는 없을 듯하다.


새벽 안개 사이로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시원하게 날아가는 하얀 골프공과 풍경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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