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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10. 2023

메일 한통으로 20억을 번 사연

귀가 솔깃하고 눈이 번쩍 뜨일 일일지도 모른다.  

메일 한통으로 20억?


염려 붙들어 매시라. 메일 한통으로 20억을 번 것은 맞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중간에 빠진 단어 몇 개가 있다. 무려 10년 동안 번 것이고 사실은 순이익이 아니라 어림잡은 매출이다. 좀 더 깊게 파고들어 보면 내가 운영하는 작은 마케팅 회사의 법인이 일으킨 매출인 것이다. 더더욱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이 가히 로또를 맞은 것 마냥 커다랗다거나 인생이 확 바뀔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으시라. 배가 아플 일이 전혀 아님을 미리 밝힌다.


2012년의 어느 가을 금요일 오후였다. 어둑해진 사무실로 주황빛 노을이 비출 태세를 하고 있었다. 퇴근 2분 전,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3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6시 정각이 되지도 않았는데 퇴근을 해버렸다. 대표가 본다면 아연실색할 일이지만 당시 회사의 분위기가 그냥저냥 그 정도의 일은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회사 메일함이 반짝였다. 나는 무심결에 메일함을 누르고 말았다. 대학 프로모션 행사에 대한 문의 메일이었다.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코트와 가방을 주섬 주섬 내려놓았다. 가산디지털 역의 금요일 저녁 지하철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헬 난이도 랄까. 상당히 버거운 면이 많았다. 미어터진다는 신도림역에 비견될만할까. 나는 차라리 1시간이라도 늦게 지하철이 타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유익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엑셀로 익숙하게 만지던 대로 견적서를 하나 뚝딱 보내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는 조금은 덜 빡빡한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했다. 사실 밀집도가 150%에서 120%로 떨어졌다고 해서 행복해질 순 없지 않은가. 여간 피곤한 퇴근길이었다.


월요일 아침 메일함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미팅을 하고 싶으니 문래로 오시오.'정도의 내용이 담긴 메일이었다. 나는 금요일 퇴근 전에 쓴 견적서 한통으로 작은 행사를 하나 수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양대 캠퍼스에서 자그마한 행사를 하며 솜사탕을 말아주며 노트북을 전시하고 게임을 하는 등의 자질구래한 행사를 하나 했었다. 여기 까지라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문제는 10년 전의 그 거래처와 2023년인 지금도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점이며 매년 1억 ~ 2억을 상회하는 매출을 꾸준히 올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시국에 잠시 주춤하긴 했어도 식당일을 하면서도 처리가 가능한 일들 위주였기에 나는 겨우겨우 현업에서 비비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말이 쉽지 아무리 고만고만한 광고업계에서 10년을 넘게 거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날 오후 30분 만에 메일을 보낸 결정은 쟁쟁한 경쟁사를 제치고 우리 회사가 선정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금요일 늦은 오후의 메일에 즉답을 한 '성격 급한' 대행사는 우리 회사 하나였다는 것이 후일담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실상은 조급한 성격을 가진 내가 단지 지하철을 조금 편히 타겠다고 망설이던 찰나 메일이 왔고 얼씨구? 하는 마음에 메일을 보낸 것뿐이었다.


인생에 있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행운의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성실하다거나 꾸준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뭐 하나 진득하고 꾸준하게 하는 법 없이 이리저리 한철 메뚜기처럼 기민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체질에 맞는 편이다. 그러한 성향이 어찌어찌 운 좋게 맞아떨어져 그런 작은 사건도 만들어낸 것이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어쨌든 20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오며 스페셜 리스트가 되지는 못했어도 그저 밥그릇 잃어버리지 않고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편이다.


20년 동안 광고 프로모션일을 해온 건 논외인 것이 이 일은 나의 천직이라 할 만큼 밸런스가 좋은 일이다.

적당한 서류 작업과 상담업무가 병행되며 행사장 현장업무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는 일이라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야 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잘 맞는 것이다. 어찌어찌 이만한 일을 찾지 못해하다 보니 20년이 흘렀다. 나에게 참 잘 맞는 일인 것이다.


코로나로 식당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년간 운영하던 때에는 그 거래처의 매출 외에는 달리 다른 곳의 매출이 없었다. 만약 그날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완전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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