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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13. 2023

시작에는 이유가 필요할까.

나는 뭔가를 하기 위해 타당하고, 온당하고, 치밀하고, 완벽한 이유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뭔가를 쉽게 '그냥'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행동하기를 주저하고 꽤나 괜찮은 이유가 안 해도 될 이유를 이길 때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늘 수많은 핑계와 이유를 양산해 내었다. 나의 창의력은 그런 핑계와 이유를 발명해 내는데 아주 많은 기여를 하고 소모되고 있었다. 


'안 해도 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발품을 파는 삶이었다.'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타당하지 못한 인생이었던가. 회사 내에서 이러한 핑계와 정치질에 온 힘을 쏟는 사람이 있곤 했다. 그게 나였다. 하지만 이런 나도 사장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나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반쪽짜리 대표가 된 나는 회사에서 하던 것과는 반대로 살기로 했다. 업무가 '나의 일' 즉 마이잡이 되고 나니 태도도 달라진 것이다. 반성은 망각했고 앞으로 잘하면 되리라는 믿음이 주를 이룬 것이다. 


나는 무지성으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충동적으로 일을 벌리고 나중에 수습하는 형태로 사업을 꾸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반대로 했어야 했다. 회사에 속해 급여를 받을 때 최대한 많이 시도하고 많이 말아먹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오히려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른다. 내 회사에서 내 돈으로 판을 벌리니 그 손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내 주먹이 내 얼굴을 치는 상황이 반복해서 연출된 것이다. 


시작에는 적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소위 그럴듯한 타당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동기로 작동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작에 앞서 그러한 동기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그 동기가 너무 완벽해야 하다거나 지혜를 가득 머금고 있어야 한다면 시작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뛰기 전에 생각하고 누군가는 뛰면서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다. '언젠가'는 나가서 뛰어야지 하는 마음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뛰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 공기가 좋지 못해서.

- 날씨가 추워서 기관지가 약해서.

- 축구를 하고 발가락이 아파서.

등등이다. 나는 모든 조건이 완전하게 개선된 날 조깅을 할 '예정'이다. 나는 아마도 운동화를 신고 바깥으로 나갈 날이 더 늦춰질지도 모른다. 오늘도 미세먼지 수치가 최고치를 돌파할 것 같다.


변화하지 못하는 나를 운동화를 신고 문밖으로 나서게 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조건도 동기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되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조건과 행복의 충족이라던가 만족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수행 쪽에 더 가깝다. 즐겁고 행복해서 해야 하고 지속할 수 있는 건 세상 누구나 하는 일인 것이다. 하기 싫어 미칠 것 같아도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동기는 뛰면서 생각해 낼 수 도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등을 떠밀며 나를 바깥으로 내몰아야 하는 때가 있다.'


시작을 가로막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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