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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25. 2023

주인이 누구인가.

귀를 기울여보라.

어딘가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메아리가 들려왔다.

웅얼거리는 미약한 소리였다. 쟁쟁거리는 머나먼 소리를 무시하고 길을 걷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인가?"


"......"


"당신은 주인인가?"


"아...... 아마도?"


순간 공허가 메아리쳤다. 텅 빈 가슴속에 심연의 끝자락까지 그 진동은 아릿하게 번져왔다.

나는 그렇게 관통당하고 말았다.


'우우 우우웅'


소리 없는 통증이 욱신욱신하게 밀려왔다. 등골의 반뼘 아래가 송연해졌다. 세포 하나하나를 세어낼 수 있을 만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도래했다. 질문자는 나였다.


자문자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이 주인이 아니라면 당신은 노예인가?"


"......"


"아...... 아...... 마도?"


"그...... 그래도! 나는 어디론가 가고는 있다고!"


그렇다.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필연의 종착역일 것이다.

누구나 기꺼이 원하지 않지만 언젠가 도착하고야 마는 어느 남루한 역 말이다.


그런 죽음은 누추할 수밖에......


떠밀려온 죽음말이다.

당당하게 개선한 죽음이 아닌 홍수의 잔해처럼 슬그머니 꾸역꾸역 오물과 잔해가 뒤섞여 떠밀려온 폐기물 같은 죽음말이다. 마치 축사의 바닥에 무릎까지 질퍽이는 소똥과 같은 질감같이 말이다.


견디고 버티고 시간을 살해하며 기필코 얻어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색하게 미소 짓는 당신의 죽음 앞에 당신은 어떤 표정으로 그것을 맞이할 텐가.



당신은 마차를 타고 가지 않았던가?

아니다. 나는 마차였다.

당신의 말들은 어디로 간 게요?

아니다. 그것들은 말이 아니라 허상이었다.

허상이라고? 그 장대한 떡대와 힘찬 다리 육중한 근육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오?

아니라니까...... 그건......


나의 쌍두마차 앞 고삐의 왼쪽에는 관성이 오른쪽에는 악습이 매달려있었던 '듯'해


나는 마부가 아니라 마차였어.

나는 마부인척 하는 무언가를 내 위에 올려두고 채찍을 휘두르게 했지.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걷고 쉬기를 반복했어.

어디로 향하는지 결코 궁금해하지 않았어.

지금 나는 어쩌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몰라.

마차는 부서지고 늙은 말들은 도무지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법이 없었지.

아니지! 오히려 그놈들의 본질에 맞게 잘 해낸 거였군!


그 두 놈, 관성과 악습은 제대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네.

마차를 부수고 두 말을 도륙하고 마부의 목을 매달아야 해.


"워워워...... 진정해."


말을 다루듯 소리를 내었다. 나는 마차이면서 말이었던가.

마부인척 했던 적도 있으니 마부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가지고 있던 건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채찍 하나뿐이다.


슬퍼지기 전에 어서 휘둘러야 했다.

마부는 앞의 말들을 때릴 것이 아니라 마차에게 채찍을 휘둘러야 했다.

진정한 본체에 위해를 가하고 상처를 입혔어야 했다.


본질을 찾아 제대로 채찍을 휘둘러야 했다.

어리석은 자여. 마차에 채찍을 휘두른다고 말들이 제대로 가던가?

그렇다.

마차에 흠집을 낼뿐 말들은 건재하지 않던가.

어쩌란 말인가.

아니다.

말들을 죽일 수는 없다.

내가 동물애호가이거나 환경을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말에게 죽음을 건넬 수는 없다.

그건 건초나 당근 같이 쉽사리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헛소리 좀 그만 지껄이라.

대체 어쩌란 말인가.


"마부가 내려서 마차를 끌고 마차의 뒤에 말 두 마리를 묶고 가야 한다는 말인가?"


"정답일세."


마부의 이름은 수행이다. 초월한 정신이며 도착선을 처음으로 밟아야 하는 존재이다.

마차는 끌어야 하는 나의 본체이며 육신이다. 채찍은 마차가 맞아야 한다.

끌려오는 말들은 살찐 악습과 무분별한 관성이다.

그것들은 여물을 다 먹어치우고 언젠가는 마차의 장식들을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마차는 날이 갈수록 해지고 닳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었다.


"이보게들! 저 한심한 인간을 보게나."


"사람이 마차를 끌고 마차뒤에 저리도 건장한 말들을 끌고 가니 저런 바보가 세상에 어딨는가!"


"하하하하하하"


'댕~'


정오를 알리는 장엄한 종소리가 순간의 정적을 자아내었다.


마부는 목청을 뽑아내어 크게 외쳤다.


"주인은 누구인가!!!"


메아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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