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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29. 2023

운명은 날씨와 같아.

저는 뼈가 얇고 관절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잔병치레도 많고 건강함과 튼튼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요.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내일 눈이나 비가 올 조짐이 보인다면 슬금슬금 기분이 가라앉거나 별일 아닌 것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곤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내일의 예보를 알아차리기 전에 일어나 버리는 일들이라 유독 짜증스러운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공고히 하는 패턴을 장기간 가지게 됩니다. 이건 구차한 핑계가 분명해 보이지만 사실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인가,라는 범주로 놓고 봐 준다면 한결 이해가 편할 것 같습니다. 


태어나기를 무던하고 건강하고 튼튼한 강골로 태어난 사람도 있는 반면 그 반대의 사람이 있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저'라는 사실을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딱히 대상이 없는 원망이기에 빨리 잊혀지고 반복적이라서 문제이지만요. 


아무튼 저는 날씨가 마치 우리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올지 해가 뜰지 바람이 불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일기 예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확도도 그렇고 확실하게 믿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상세한 일기예보보다는 다소 느슨한(러프한 이라고 하기에는 단어가 와닿지가 않네요.) 일기예보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날씨는 인간이 어쩌지 못한다는 면에서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는 일부터가 도무지 내가 관여한 게 하나도 없으니 말이죠. 과도한 설명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고 싶지 않지만 날씨를 이야기하면서 극단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삶에 날씨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매일 만나는 일상적인 인연은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고 어쩌다 만나는 '특별한 인연'은 상당한 변수를 창출해 낸다는 점이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을 나쁘다거나 좋다고 단언할 수 없듯 특별한 인연도 좋거나 혹은 나쁘기 때문입니다. 


가뭄을 해갈해 줄 단비와 한여름의 찬란한 소낙비, 운동장에 내리는 여우비는 단지 비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때 내리는 알맞은 비라서 좋은 거겠지요. 하지만 이런 비도 너무 많거나 오래 내리면 재난이 되곤 합니다. 인간관계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스며든 인연은 '염증'을 만들어 냅니다. 마른하늘에 가끔 내리는 비는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 삶을 쾌적하게 만들지만 장맛비는 집안에 곰팡이를 피게 합니다.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곰팡이가 피어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자주 환기를 시키고 커튼을 세탁하고 이부자리를 털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환기'가 매번 새로움을 가져다 주진 못하지요.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인연으로 인한 '염증'은 어찌해 볼 도리라도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이 두렵고 거부감이 듭니다. 타인의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지요. 답이 없는 문제이기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이야기들은 공허함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인간관계만큼 주관적인고 개인적인 영역이 어디 있을까요. 


적당한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보고 정당히 마음 나누고 하는 것들의 이면에는 결단코 상처받지 않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나 창피함을 필사적으로 피하려 합니다. 물론 한순간의 실수로 뭔가 균열이 가는 상황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은 십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살면서 도무지 실수 한 번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고통을 창출해 내는 능력을 조금은 떨어뜨려야겠습니다.


인간으로 인한 염증은 외면에 묻어있습니다. 그 염증을 내면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건 순전히 본인입니다. 날씨는 우리의 동선을 바꿉니다. 날씨는 운명처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연은 삶의 날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 방과 내 마음을 환기시키고 곰팡이와 염증을 내보내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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