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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Jul 23. 2023

26. 단순하게 먹어야 한다.

나는 미식의 세계에 한창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어릴 적 못 먹고살았던 트라우마 탓인지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것들에 대한 열망이 조금은 남달랐다. 한창 유행하던 맛집블로거들의 글들을 탐독하며 맛집 탐방을 해보는 것이 취미였다.

계란프라이도 부치지 못하던 남자에서 나는 어느덧 식당을 열만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물론 식당을 하는 것과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3년을 고생한 끝에 식당을 폐업하고 요리는 이제 손을 떼고 집반찬류를 몇 가지 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있다.


사실 어지간한 요리는 거의 해볼 법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프렌치며 스테이크, 각종 면요리, 베이킹도 제법 한다.

나물류며 찌개나 탕국류도 자신 있다.

한때는 반찬이 최소한 7개에서 11개는 있어야 밥을 먹곤 했으니 음식에 대한 열망이 집착으로 변질되기도 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와이프에게 강요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다 만들고 차리기를 했으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와이프 입장에서는 크나큰 고역이었을 것이다.

주변인의 생일상을 전날부터 준비하고 차리는 별난 짓도 수년을 지속했다.

종갓집 며느리도 마뜩잖아할 일을 자처해서 한 것이다.


나는 나를 바꾸는 변화의 시기를 거치며 나의 식습관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미식을 좋아하지만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다.

미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식탐이 있다는 말이며 필연적으로 살이 찌게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살이 찌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그 음식을 체내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는 평생을 거의 매달 혹은 격주에 걸쳐 체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이었다.

집안의 상비약으로 항상 소화제가 두통정도는 구비되어 있다.


2. 지나치게 높은 외식 비용과 식비

좋은 재료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인간의 큰 행복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뭐든 아니함만 못하다. 버려지는 식재료가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물가가 오를수록 터무니없는 식재료 가격에도 미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배달 음식과 잦은 외식 좋은 식재료를 사들이며 나는 앵겔지수가 역대급을 찍어버리며 가계가 휘청거리는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3. 필연적 일지 모르나 술이 문제였다.

나는 어느 순간 입에도 못 대던 술을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와인과 사랑에 빠지며 2번 항에 해당하는 '식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 병에 최소 5만 원에서 30만 원가량 하는 와인을 턱턱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와인 셀러를 구매하진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셀러를 살바에는 그 돈으로 한병이라도 더 좋은 와인을 마셔 보고 경험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4. 건강이 망가지고 보니 보이는 것들.

매일 마시는 맥주 한 캔, 술이 술을 부르고 만남을 부르고 술자리를 불렀다. 그로 인해 좋은 사람도 안 좋은 사람도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술은 모든 것을 좋게 하지만 종국에는 모든 것을 나쁘게 한다. 술이 곁들여지고 체하는 증상과 두통과 감기는 더욱 잦아졌다. 밤늦게 야식을 먹고 마시고 과식을 하게 되었고 아침에는 늦잠을 퍼질러 잤다. 배달어플에서는 VIP가 되어갔지만 병상에 눕는다면 일반병실 그것도 8인실에나 겨우 들어갈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1년 안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만큼 나의 건강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추락하고 있었다.


살려면 단순하게 먹어야 한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살아야 한다.

그 '잘'이라는 것은 나에게 맞게 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맞는 건 세상 누구도 모른다. 결국에는 나를 알아야지만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1. 술을 끊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했고 나중에는 각종 핑계를 대며 술자리에서 빠지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약을 먹는다는 등의 가벼운 거짓말로 모면했다. 요즘같이 뜨거운 날에는 시원한 맥주 한잔에 대한 열망이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때가 있다.


2. 배달어플을 지우고 야식을 끊었다.

아이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그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야식을 먹지 않으니 체할 일이 거의 없고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에 가볍게 일어날 수 있고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아침이 더욱더 개운하다.


3. 단순하고 깔끔하게 찬을 준비한다.

3찬 정도에 메인으로 국이나 볶음류를 간소하게 하고 잡곡밥이나 콩을 넣어 밥을 지었다. 요리에 쓰이는 시간과 현란한 재료에 쓰이는 식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술을 구매하는 비용과 배달음식을 시키는 비용을 줄이니 돈에 대한 걱정도 한결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속이 편안하고 공복 상태를 몇 시간이라도 유지한다는 것에 부부의 건강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4. 의식적으로 식재료를 선별하여 구매한다.

'과생산'된 식품을 적게 구매하고 적게 섭취하려 한다.

시리얼, 과당, 탄산, 커피, 수입과일, 우유, 치즈, 잼, 하얀 정제밀가루의 소비를 줄였다.

대신 통밀식빵, 현미, 잡곡, 닭가슴살, 돼지고기, 제철과일, 제철야채로 단순하고 간결한 요리를 지향하게 되었다. 냉동식품을 잔뜩 사서 냉장고에 쟁여두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탄산음료도 줄이고 병적으로 중독증세를 보였던 커피도 의식적으로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가던 비싼 스타벅스와 카페를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비싼 원두커피를 사지 않았으며 공짜커피나 믹스 커피를 하루에 한잔 마셨다.

그렇다고 내가 사야 할 상황에서 아끼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커피나 밥은 대부분 내가 사는 편이며 타인에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유는 신장에 병이 생겨 이뇨작용 때문에 못 마신다고만 해두었다. 이는 사실이기도 하다. 나의 절약이 가족의 궁핍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5. 발명된 아침을 먹지 말자. 아침은 안 먹어도 무방하다.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거나 과일 몇 조각에 우유식빵에 잼, 햄과 베이컨, 계란프라이 등을 먹이던 것을 완전히 끊어내었다. 삶은 달걀과 현미누룽지, 통밀식빵을 먹는다. 허기가 지거나 에너지가 없다면 챙겨 먹고 먹지 않아도 오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먹지 않아도 된다. 왕처럼 아침을 먹으라는 속설은 만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를 수 있다면 거르는 게 좋다.


6.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들을 피한다.

나는 짜디짠 김치에 젓갈류를 좋아했었다.

명란, 낙지, 오징어, 갈치속젓 등을 밥반찬으로 내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게장, 새우장, 전복장등의 반찬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회를 좋아하고 진귀한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닭발, 곰장어와 같은 소주 안주도 좋아했다. 맵고 자극적이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음식들은 과식과 과음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높다. 오신채를 먹지 않는 스님처럼 철저하진 않지만 극단적인 자극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정제염만을 쓰려하고 기름을 적게 두르거나 쓰지 않는다.

(말돈 소금, 게랑드 소금 등을 부러 찾아 쓰며 과시하는 태도를 버렸다.)

바다생물은 가급적 덜 먹으려 하고 돼지고기와 닭고기 위주의 식단을 지향한다.

소고기는 비싸고 맛도 없고 건강에도 별로이다. 대신 미역국이나 소고기뭇국은 예외이다.


냉장고를 텅텅 비우고 산다.

냉동고는 수시로 불필요한 음식들을 버리고 최소화한다.

냉장고는 50%를 넘기지 않게 여유롭게 운용한다.

적게 사고 버리는 음식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쓴다.

잘 쓰지 않는 김치 냉장고를 팔아버렸다.

일 년에 서너 포기도 먹지 않을 김치를 저장하기에는 김치냉장고는 너무 크다.

장모님 댁의 김치냉장고와 우리 집의 김치 냉장고까지 두대를 사며 할인을 받기 위해 들어둔 2개의 상조는 아직 납부가 끝나지도 않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는 것이 가장 좋다.

변비에 걸리거나 공복 때문에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먹고 싸는 일이나 횟수 시기 등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는 자세도 나쁘지 않다.

다만 에너지는 관리해야 한다.

피곤 해지기 전에 휴식을 취하듯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야 한다.

계획적인 단식은 괜찮지만 기분 내키는 대로의 단식은 백래쉬로 인해 과식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내가 아는 백래쉬는 기어와 기어의 역회전 중 일어나는 기어 이빨간의 공차를 이야기 했었지만 요즘은 참 다양하게도 쓰인다.)


적게 먹어야 한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하루에 반드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두 끼나 한 끼도 무방하다.

간헐적 단식은 철저히 공부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해도 좋다.

야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차 종류나 커피도 가려서 마셔야 한다. 몸에 잘 받는지 적합성을 따져가며 마셔야 한다. 술은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잔 정도만 마셔야 한다.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은 마셔둬야 하고 집중한다 해도 50분에 한모금 이라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음식을 먹지 않는 시간을 12시간으로 해두어도 공복시간은 7시간 남짓이다.

공복인채로 잠을 자는 것은 신체 회복에 탁월한 기본 값이 된다.



먹고 마시는 것을 통제하면 대부분의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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