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자 다른 커피에 중독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절이 돌아왔다.
무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아메리카노의 쌉쌀하고 시원한 청량감은 음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사해 준다. 매우 애석하게도 올해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무더운 여름은 아무래도 집안에 비치된 냉장고의 냉동기능이 빛을 발휘하는 시기이다.
올해만큼 냉동칸의 얼음트레이가 분주하게 일을 했던 해는 없으리라.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얼음을 털어내는 딸아이의 작은 팔뚝이 분주하다.
나는 원두커피를 모르던 시절의 입맛으로 회귀했다.
표면상으로는 신장과 이뇨, 면역력 문제로 커피를 끊었다.
보조적인 이유로는 습관적으로 카페를 들러 비싼 브랜드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매하는 습관을 버리고자 시작한 면도 있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텀블러와 프리퀀시도 다 치워버렸다.
(텀블러가 과연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될까? 정말?)
샷 추가를 마치 '잘 나가는 현대인의 마패' 이냥 구는 나 스스로도 꼴 보기 싫었다.
이러한 연유로 중독에서 벗어났으나 하루 한잔 달콤한 맥심 커피 한봉쯤은 허락하기로 했다.
하루 한잔 맥심 한잔
어쩐지 광고 카피 같지 않은가.
나는 하루 한잔 뜨끈한 맥심 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날 시원한 아이스 맥심을 제조하는 방법에 눈을 돌렸다.
별건 없지만 요즘 내가 푹 빠진 맥심 아이스커피의 제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컵에 맥심 한봉을 붓는다.
- 평소 보다 아주 적은 뜨거운 물을 부어 컵 째 살살 돌려준다.
- 원두 알갱이가 다 녹지 않거나 설탕이 바닥에 있어도 상관없다.
- 얼음을 한가득 넣고 휘휘 돌려 마신다.
첫맛은 달콤하고 커피 알갱이가 간혹 씹히며 상당히 풍미가 진하다.
갈수록 시원한 얼음이 녹으며 맛있는 아이스커피가 된다.
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나는 하루 중에 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은근히 기다리기까지 한다.
한 번은 열변을 토하며 이 커피가 왜 맛있는지에 대해 아내에게 설명하는데 아내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에 그만 둔적도 있다. 단점이 있다면 얼음으로 인해 차가워진 컵에 결로 현상이 생겨 물방울이 후드득 책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23년 여름은 유난히 무덥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내면의 이야기들이 있을지언정 별다른 개인적인 소사를 다 쏟아내고 싶지는 않다.
행복이 무언지 사는 게 무엇인지 하나하나 답을 찾아나가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한번 쓰러진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건 역시나 휴식과 시간이 최고다.
6시 기상
오전 루틴
아이들 등교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 하기.
그리고 커피 한잔 마시며 끄적거린다.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