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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Jun 26. 2024

나의 인생 라면 Top 3

여러분의 ‘인생라면’은 무엇인가요?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

맛없기 어려운 음식이 바로 라면이라지만, 누구에게나 그중에서도 특히 잊지 못할 ‘인생라면’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은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는 특별한 라면 세 그릇을 꼽아본다.




1. 제주도 자전거 종주 중 먹은 해물 라면


때는 바야흐로 나의 대학교 입시가 막 끝났을 무렵, 좋은 학교에 붙었지만 아쉬움과 미련이 가득 남고 머릿속이 복잡하던 시기였다. 나는 미국으로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졸업과 미국 대학 학기 시작 사이에 간격이 있어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 하루의 낙은 집 근처 강변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다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혼자서 2박 3일간의 제주도 종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제주공항 근처 자전거 대여소에서 오전에 자전거를 빌리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무작정 출발했다. 과연 이 길이 올바른 길이 맞는지 싶을 즈음, 내 옆으로 푸른 제주도의 바다가 한가득 펼쳐졌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과 풍경을 만끽하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두 시간정도 달렸더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퐁당 라면’이라고 쓰여있는 큰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자전거를 세우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해물라면과 흑돼지라면을 팔고 있었다. 나의 선택은 12000원짜리 ‘해물이 퐁당’. 꽤나 거금의 라면이라 조금 망설여졌지만 음식이 나오자마자 그런 생각은 사그라들었다. 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게와 전복, 새우, 홍합 등 각종 해산물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퐁당라면

배고픔에 헬멧을 벗고 허겁지겁 라면을 한입. 바다를 머금고 있는 꼬불꼬불한 면발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그러고 나서 오늘 하루 내 기운을 책임져줄 전복부터 홍합 하나하나 꼼꼼하게 발골했다. 쫄깃한 면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칼칼한데 해물의 향이 스며들어 있는 국물까지 깔끔하게 흡입했다.


라면은 완벽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라면의 맛뿐만이 아니다. 바로 밖에 마련되어 있는 좌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션뷰 라면이라니. 판포포구를 바라보며 라면을 먹으며 앞으로 3일간의 여정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뷰


국밥보다 든든한 해물라면을 먹은 뒤 나는 힘차게 다시 출발했고 3일간의 제주도 자전거 코스를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




2. 페루 쿠스코 한식당에서 먹은 라면


작년 3월, 나는 배낭 하나를 걸치고 페루로 떠났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변수에 발목을 잡혀 고생하고 있었다. 그 변수의 이름은 바로 ‘고산병’. 페루 쿠스코는 해발고도가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였다.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처음 겪어보는 두통이었다. 정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눈도 제대로 못 뜨겠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하루이틀이 지나며 고산병에 조금은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은 무려 해발고도 5036m에 달하는 무지개산 비니쿤카에 올라가는 날이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머리가 지끈지끈거리고, 어지러움에 한 발짝 앞을 내디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가까스로 고지에 도달했고 머리 아픈 게 잠시 잊힐 정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았지만, 산에서 내려오면서 매스꺼워 토만 두 번을 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후 5시 거의 다 되어 쿠스코로 돌아왔다. 기절하기 일보직전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는 쿠스코에서 한인민박에 묵고 있었는데, 민박에서 만난 형님은 내 상태를 보고 나를 한식당으로 데려갔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러 오랜 기간 페루에 머물러 있는 분이었다. 우리가 간 식당 이름은 ‘k-food’.  누가 봐도 한국음식을 파는 굉장히 정직한 가게명이었다.



메뉴판을 보고 곧바로 라면을 시켰다. 가격은 25 솔. 당시 환율로 9000원 정도였다. 사실 그때 가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단지 그 뜨끈한 라면 국물이 너무너무 시급했다.



라면이 나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계란 풀은 라면을 맛보게 될 줄이야. 국물을 한입 떠먹는 순간, 나는 기적을 맛보았다. 라면 스프의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두통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했다. 라면국물로 수혈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게 바로 한국의 맛이구나. 이제야 살 것 같다.’ 애국심이 절로 고취되었다.



라면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을 것 같아 함께 주문한 제육볶음. 양 많고 고기가 두툼한 편으로 가격은 40솔이었다. 양파와 파가 함께 볶아나왔고 깨가 솔솔 뿌려져 있었다. 달달하면서 매콤한 양념의 맛은 강력했다.


그렇게 나는 라면 한 그릇에 제육볶음과 밥 한 공기까지 순식간에 처리했다. 아주머니도 너무 친절하셔서 기분 좋은 식사였다. 라면을 먹고 난 이 이후로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난 전혀 두통을 느끼지 않았다.


라면은 나에게 최고의 고산병 치료제였다.




3.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몰래 먹던 컵라면


나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라면 취식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몰래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감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룸메이트와 온갖 노력을 하며 먹던 라면이 나는 그 무엇보다도 맛있었다.



우리는 밤에 조용히 일어나 텀블러에 받아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그리고 냄새가 복도에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문 앞에 페브리즈를 잔뜩 뿌린 뒤 컵라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면이 익을 때까지 3분간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나의 최애는 육개장 사발면이었다. 얇은 면발에 국물도 너무 자극적인 느낌도 아니고 양도 적당했다. 육개장과 더불어 나의 야식을 책임져준 까르보 불닭볶음면, 그리고 진짬뽕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매점에서 사 온 매운 만두와 함께 하면 지긋지긋한 학업 스트레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시험기간에는 특히 더.


시간이 지난 이제야 몰래 먹던 이 라면에 대해 마음 편히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룸메이트와의 팀워크가 중요했던 라면. 이렇게 먹을 때는 그 어떤 고급 식재료, 파인다이닝도 부럽지 않았다. 집에서 끓여 먹는 컵라면은 절대 이 맛이 나지 않는다.




되돌아보니 라면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는 다름 아닌 그 순간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맛있는 라면’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순간’만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그 순간이 바로 최고의 조미료였던 것이다.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현재에 살 수 있을까?

일단 라면을 하나 끓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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