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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Sep 20. 2018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간 달리기(8)

가을에 뛴 사색!

가을에는 왠지 가슴이 비어 가는 것 같다.

한숨으로 날려버릴 수 없는

눈물로 씻어낼 수도 없는

그런 허전함이다.

일종의 박탈감 혹은 상실감과 비슷한 허전함이다.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런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담배 한 개비를 피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두르고 길에 나섰다.


어둠 속을 뛰다가 어느 천변에 가서 먼동을 봤다.

그다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마음과 비슷한 추수가 끝난 논이다.

벼는 베어지고 퀭하니 널브러져 있는 척박한 땅은 어둠 속에서 뛰는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모를 동질감을 느끼고 서글픈 생각에 잠겨 평지를 뛰어 또 다른 천변에 도착했을 때,

날은 어느 정도 밝았고 강은 추운지 입김과 같은 물안개를 피어내고 있었다.

매미의 한철, 여름은 완벽하게 지구 남쪽으로 이동해가고 있다는 생각과

남반부 여름에도 매미가 울까라는 이상한 의문이 들었고

남반부의 매미소리를 듣고 싶다는 엉뚱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계단을 오르니 세상에는 어둠이 완벽하게 사라지고 난 약 12시간을 동행한 밤과 잠시 이별하게 되었다.

밝아진 현실이 내게 보여준 것은 추수 전의 논과 추수가 끝난 논이다.

한쪽은 풍요롭고 한쪽은 척박했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은 더 컸다.

근데 저쪽에 또 한 가지 보이는 것이 추수 중인 논이다.

콤바인이 벼를 자르고 낱알들을 모으고 있었다.

왠지 또 이상한  생각이 든다.

논이 벼를 버려 척박해지고

우리는 그 풍요를 먹고사는 것이 아닌지?

우리 부모님의 희생을 먹고 우리가 컸듯이

우리의 박탈과 상실은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는 아닌지?

논은 언제 가는 추수 하듯 우리에게는 박탈과 상실이 숙명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을 멋지게 받아들여야겠다.

6년을 기다리고 한철을 보낸 매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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